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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May 20. 2016

이슬람 미술의 아름다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이슬람 미술박물관

인도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힌두교가 이슬람교와 동거하는 모습엔 오묘한 구석이 있다. 힌두교는 그야말로 다신교다운 다신교이고, 현재 일신교 중에서도 가장 일신교스러운 종교를 꼽으라면 이슬람이 수위를 다툴 테니 말이다. 


종교 미술을 나란히 놓고 보면 특히 대비가 강렬하다. 힌두교 만신전은, 바로 앞에 바투 동굴에서 찍어온 사진만 보아도 드러나듯이 다양하고 분방한 사람과 동물과 요괴 형상으로 가득하다. 아래에서 정리할 이슬람 미술은 그와는 정반대로 사람과 동물의 형상이 적다. 공식적으로 사람과 동물이 금지되기 때문에, 그들은 주로 식물 문양과 글자와 기하학 도안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가는 길에 나오는 국립 모스크. 현대적이면서 단순한 디자인


그래서 이슬람 미술을 좋아한다. 실은 모든 종교 미술에 다 매력을 느끼지만, 이슬람 미술은 뭐니 뭐니 해도 엄격한 제한 규칙 속에서 극도로 화려하고 정교한 장식을 뽑아낸다는 점이 최고다. 인간이나 동물을 빼고, 넘치기보다는 절제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정갈하지만 사람 손이 보통 가는 게 아닌 식물 문양과 기하학 도안과 화려한 서예 양식... 내부를 텅 비우면서 천장에 온 힘을 쏟고 바깥을 대담하고 다양하게 확장하는 건축. 이거야말로 인간이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어 하는 욕망을 더 강렬하게 보여주는 예랄까. 금욕적인 욕망이라니(어째선지 불끈). 


그래서 다른 박물관은 몰라도 유난히 평이 좋은 쿠알라룸푸르 이슬람 미술 박물관(Islamic Art Museum)만은 꼭 가보고 싶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말레이시아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슬람 세계에서 모아들인 유물과 작품이 7천 종이라지 않나. 



다만, 지도를 보고 가까울 줄 알았던 쿠알라룸푸르 역 (KL 센트럴이 아님)에서 미술관까지 가는 길이 절대 직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전을 바투 동굴에서 보내고 돌아온 시내는 이미 뜨거웠고, 역에서 미술관까지 가는 30여 분만으로도 남은 체력이 소진되기엔 무리가 없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돌아가기도 무리였다. 가까스로 박물관에 도착해서 들어간 후에는 그래도 기운이 다시 났지만, 주로 나만 신났던 듯. 동행은 그때도 힘들어 보이더니 나중에 그림일기에서도 여기는 그림 한 장 없다...(먼산) 


더운 곳에 여행을 가면 가는 길을 좀 더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다짐을 한 번 더 해보며.




그나마 안에 들어가니 시원하기는 했다. 유럽이나 터키에서는 박물관 안에 냉방을 하지 않았기에, 혹시 여기도 그러면 어쩌나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아무튼 그래서 들어가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이슬람 사원 모형! 칼과 총! 문짝! 아름다운 꾸란! 기타 등등! 이 있다. 



세계 여러 이슬람 국가의 대표적인 모스크들을 한 방에 모아놓았다. 인도의 타지마할부터 중국 신장의 청진사, 아프리카의 젠네 모스크(*이 모스크의 독특한 건축양식을 그대로 본뜬 건물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제주도의 아프리카 박물관이다)까지... 돔과 미나레가 들어간다는 공통점을 빼면 나라마다 얼마나 다채로운지, 얼마나 다른 자연환경에 맞추어 적응했는지 볼 수 있다. 물론 말레이시아에 막 들어왔을 때 전통가옥에 자리 잡았던 모스크도 전시 중. 



뭐, 동물과 사람을 그리거나 조각하지 말라는 조건도 완벽하게 지켜지는 건 아니지만, 가끔 보이는 동물 형상은 조심스럽게 추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불교/힌두교 미술과는 양상이 전혀 다르다. 



물론 경건한 종교 미술만 있을 리는 없다. 화려한 부채, 체스판, 도자기는 물론이고 도대체 무기에 저런 장식이 왜 필요한가 싶은 (그러나 눈이 즐거운) 화려한 칼과 방패와 총들이 즐비하다. 



예외적이라고 할 만큼 확연한 동물 형상이 하필 총이라니. 쏠 순 있었던 걸까 이거.


... 이렇게 사진 찍어대면서 혼자 신났다가 나중에 보니 동행의 에너지가 바닥이었다... (시무룩)


내부 카페에서라도 쉬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하필 이 미술관 카페는 비싼 데다가 따로 음료수만 사 먹을 수도 없게 뷔페로 통일이었다. 결국 의자에 앉아서 그냥 쉬다가 다시 땡볕 속으로 나가야 했다. 


어찌어찌 늦은 점심은 기사식당 같은 곳을 찾아서 잘 먹었지만, 그 후에 왔던 길로 돌아가지 않고 KL 센트럴까지 저쪽 방향으로 걸어가면 될 거라고 주장한 나 때문에 아스팔트 길을 하염없이 걷는 오후 대참사가 벌어지고...


동행은 다음 날 아예 숙소에서 나오지 못했다...  -_) 


2016.03.05




- 이슬람 미술관, 국립 모스크, 경찰 박물관 등은 쿠알라룸푸르 역에서 가깝다. KL 센트럴과는 다른 역이다. KL 센트럴에서 그냥 택시를 타는 것도 방법일 듯. 


- 미술관은 총 4층으로, 이슬람 건축 갤러리, 꾸란을 비롯한 책과 문서 갤러리, 인도 갤러리, 중국 갤러리, 고대 말레이 갤러리에 오트만 제국 갤러리까지 갖추고 있다. 입장료는 14링깃(약 4천 원). 


- 그 와중에도 기념품점까지 샅샅이 보고 나왔다. 이것도 거의 전시관만큼 볼 만하고, 물건 질도 좋은 편. 그러나 희한하게도 기념품은 시티갤러리에 더 탐나는 물건이 많았다. 여기에서 파는 물건 상당수는 센트럴 마켓에서도 살 수 있다.


- 공식 홈페이지에서 비주얼 투어 가능. http://www.iamm.org.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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