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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May 22. 2016

사람 사는 사적지 걷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

이번에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자각했는데, 언젠가부터 어디를 가든 습관적으로 도착한 날 저녁 그리고/또는 다음 날 아침에 주변을 산책한다. 주변 거리가 어떤 분위기인지, 무엇이 있고 어떻게 생겼는지 알면 안정감이 생긴다. 간혹 숙소 위치나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주변 산책을 못하고 관광만 하면 뭔가 허전하다. 그러니 가보고 싶은 동네 한가운데에 숙소를 잡는 게 최적이다. 


쿠알라룸푸르에 갈 때 이미 그렇게 숙소를 골랐고, 도착해서 저녁에 바로 주변을 걷고 다음 날 아침에는 메르데카 광장을 제대로 걸었다. 


그렇지만 어쩐지 평소 같은 산책은 나흘째인 이 날에야 했다는 기분이 든다. 앞에 말한 두 번의 산책이 보행자에게 너무나 불친절했던 차도 중심이었다면, 숙소인 레게 맨션에서 남쪽으로 차이나타운을 향해 가는 길은 비교적 걷기 좋은 좁은 길들이라 그런지도 모르겠고, 또... 차이나타운이라는 관광지를 구경했다기보다는 그냥 이 동네엔 뭐가 있나 기웃거린 느낌이라 그러려나. 


메르데카 광장 주변만이 아니라 여기도 백 년 된 거리다.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이 일대에 이 도시와 나이가 비슷한 힌두교 신전, 중국식 불교 사원, 도교 사원, 찻집에 인도식 이발소 건물, 영국과 네덜란드와 이슬람 양식이 뒤섞인 상가 건물들이 뒤섞여 있다. 다만 그쪽이 관공서 중심이라면 여기는 말 그대로 상점과 작은 사원들이라 생활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 사적지이긴 한데, 사람 사는 사적지다. 




길거리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차이나타운의 문이 나온다. 각종 노점에서 물건을 팔고 음식을 팔지만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다. 물론 이 구역에서는 흥정이 필수. 그나저나 Jalan이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로 길, 걷다 등을 뜻한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었지만 Petaling은 뜻이 뭘까 궁금해졌다. 이 길의 이름이 한자로 茨厂街라는 건 알았지만, 이게 곧 Petaling street라는 뜻은 아니고...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제보 바란다. 


1920년에 만들어져 거의 백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찻집. 음식 맛도 괜찮다고 해서 기웃거려 봤지만 시간대가 애매해서 관뒀다. 


차이나타운 끝까지 갔다가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돌려 올라가다 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힌두교 사원이 있다. 스리 마하마리암만 템플. 1873년 설립... 이라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 입구가 중요하지. 

게다가 앞에 사람이 유난히 북적거리고 꽃을 단 자동차도 있고, 뭔가 느낌이 왔다. 해서 입구 왼쪽에서 신발을 맡기고 (그렇다 도심에 있어도 힌두교 사원에 들어가려면 맨발이어야 한다!) 들어갔다. 


럭키. 결혼식 중이다! 가운데에서 벌어지는 혼인 의식 자체도 흥미롭게 보았지만 인도계 사람들이 다채로운 사리를 휘감고 모여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눈이 호강했다. 

물론 명색이 차이나타운이라, 힌두교 사원보다는 중국 사원이 더 많다. 결혼식은 없었지만 역시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원마다 향을 피우고 공물을 놓고 뭔가를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쿠알라룸푸르를 본 게 고작 나흘인데, 그 안에서만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중국 불교와 도교 사원을 다 봤다. 그만큼 오래전부터 차례차례 전해 온 인도, 중국, 페르시아와 아랍의 영향이 다 짙게 남아 있고, 말레이계(로 묶어버려서 미안하지만, 그 안의 여러 민족들)와 인도계와 중국계가 다 각자의 전통을 지킨다. 여기에 16세기부터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일본-다시 영국 지배에 이어 독립한 지 50여 년. 그야말로 다민족, 다문화, 다언어 사회. 백 년밖에 안 된 도시라기에는 여기에 집약된 역사가 깊고 다채롭다. 다문화 사회가 어떤 것인지 단시간에 경험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드물지 않을까.  



다시 메르데카 역 근처까지 돌아와서, 시계탑이 있는 작은 광장. 여기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5일간 숙소였던 레게 맨션이 나온다. 그리고 시계탑에서 남서쪽에는 센트럴 마켓이 있다. 


지도를 들고 걷다 보니 오전이 다 지났기에 센트럴 마켓과 이 광장 귀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노점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나흘쯤 있으니 겨우 동네가 익숙해졌는데, 좀 익숙하다 싶으면 떠난다. 


- 2016.03.06 



숙소에 대해 짧게 덧붙임. 


- 쿠알라룸푸르 숙소를 검색하면 대부분 레게 맨션이 나올 테고, 론리플래닛에서도 탑초이스로 실려 있다. 넓고 크고 깨끗하고 보안이 철저하며 위치가 좋다. 특이하게도 아침이 아니라 저녁 식사 무료. 저녁은 보통 두 종류 중에서 고를 수 있고 맛도 괜찮다. 다만 저녁에 꼭 가보려는 맛집이 있거나, KL타워/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쪽 번화가에 나가보려 한다면 저녁 식사 무료라는 조건이 의미가 없을 수도. 



- 여기는 도미토리 침대 공간이 넓고, 커튼으로 완벽하게 분리되기 때문에 평판이 좋기도 하다. 혼자 여행했다면 이용했겠지만 둘이 다니다 보니 그냥 2인실(공용화장실) 이용. 


- 숙소 자체 보안은 좋지만, 주변은 번화가가 아니다. 방에서는 와이파이 신호가 잘 잡히지 않고, 공용 휴게실에서도 들쭉날쭉하니 인터넷이 가장 중요하다면 오히려 규모가 작고 최근에 문을 연 숙소가 나을 수 있음. 자유여행자 집결지답게 밤마다 옥상에서 술파티를 벌이니 옥상 바로 아래 방이 걸리면 시끄러울 수 있음. 


- 호텔스닷컴과 호스텔 월드에서 예약 가능하지만, 아예 레게 맨션 홈페이지로 가면 방과 침대 내역이 더 자세히 보인다.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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