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숙제를 봐주는 알바

어른이라고 편하게 일을 감당하지 않는다

by 아스크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의 일상은 빠른 속도로 변했다. 마스크와 손 씻기는 필수가 되었고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새로운 '비대면 시대'가 동시에 열렸다. 손을 자주 씻고 위생에 신경 쓰다 보니 감기는 덜 걸리고 눈병은 예방이 되었다. 집에서 요리해 먹는 날이 많아져 부모의 요리 실력은 일취월장하고 가족 전체의 활동반경이 좁아져 구성원의 몸집은 불어났다.



가계 수입은 반으로 줄고 지출은 배로 늘었다. 부모는 잔소리꾼이 되고 아이들은 스마트폰 중독자가 되었다. 그나마 아이들이 잠을 신생아처럼 자서 키는 커졌다. 부모의 재택근무와 아이의 온라인 수업으로 반강제로 가족이 함께 있다 보니 서로 싸우고 화해하며 가족 간에 찐한 우정이 생겼다.



학교와 교사의 기능이 중단되면서 돌봄과 교육을 동시에 떠맡은 부모의 역할이 커진다. 모든 학생이 홈스쿨링을 접하면서 아이와 부모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학교가 하던 일을 가정이 대신하기에는 서툴고 버겁다. 아이를 나무라는 일이 늘고 부모에게 대드는 일도 잦아진다. 각자의 삶이 통제가 되지 않아 부정적인 정서가 쌓이고 결국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의 역할은 정녕 한계가 없는 것인가?



오늘 아침도 나는 새로운 '부모 숙제'인 학생 건강 자가진단을 스마트폰으로 직접 한다. 온라인 수업을 듣지 않는 날 등교하는 아이의 체온과 의심 증상을 집에서 미리 체크하여 입력해야 한다. 등교 전 필수사항이다. 정신없는 아침을 두 배로 더 정신없게 만든다. 몇 번 깜박하다가 알람을 설정했다. 도대체 몇 개의 알람이 내 스마트폰에 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아이와 관련된 것들이다. 하루 종일 울려 대는 알람 소리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 발달하면서 종이 가정통신문이 아닌 학교 e알리미가 학교 공지와 가정통신문을 대체한다. 이로 인해 학생의 삶은 편리해지고 반면에 학부모의 삶은 바쁘다. 특히 초등학생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학생들이 적다 보니 앱을 설치하고 로그인하는 사용자가 대부분 학부모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숙제와 준비물에 관련된 내용을 학부모가 확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숙제는 다 했니? 준비물은 챙겼니?"라고 물어볼 수밖에 없다. 잔소리만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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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 숙제를 봐주는 알바다



아이는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으로 정해진 학교 수업 진도를 따라가야 한다. 아이가 스스로 보고 판단하고 깨우쳐나가는 주체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보조 선생’이 되었다. 근데 생각보다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도 숙제가 이렇게 많았는지 오늘도 아이에게 물어본다.



아내와 번갈아 ‘보조 선생’ 역할을 수행하면서 세끼 식사에 간식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나도 아내도 지친다. 우스갯소리로 선생님 월급 반을 우리 학부모들에게 줘야 한다고 푸념한다. 옆에 끼고 잡다한 모든 것까지 챙겨주다 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어느새 나는 수다쟁이가 되고 아이는 혼자서 쫑알댄다.



아이 주도 학습? 부모 주도 학습?



아이의 숙제를 옆에서 돕다 보니 때로는 중학생이 수행해도 쉽지 않을 만한 과제가 생각보다 많음을 깨달았다. 좀 어렵다 싶은 것은 부모가 도와주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직접 해야 되는 것 까지도 아이는 일단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 내 아이만 역량이 안되나? 내가 옆에 있어서 의존도가 높아졌나?



비대면 수업이라 시간제한이 없다 보니 숙제 하나를 끝내는데 과도한 시간이 들어간다. 때로는 설렁설렁해도 된다고 알려줘도 그림 숙제를 위해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면서 1시간을 허비한다. 중요도와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라고 해도 못 알아듣고 오히려 꼬박꼬박 말대꾸다.



친자식 인증법이 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치다가 샤우팅이 여러 번 나오면 바로 친자식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걸린다는 초6병 진단법도 있다

내 아이가 말귀를 못 알아 들어서 갑갑하다. 꾹 참고 아이에게 같은 말을 6번 한다. 그제야 말뜻을 알아먹는다면 그 아이는 초6병이다



분명 주어진 단어를 포함해서 5 문장을 쓰는 것이 국어 숙제인데 아이는 1 문장을 쓰고 다 했다고 한다. 이건 아니지 4 문장을 더 써야 된다고 하면 아이는 더 이상 아무 생각이 안 든다고 한다. 본인은 잘한 거니 칭찬해줘야 한다고 한다. 교육상 칭찬을 해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다 보니 이제는 자기가 진짜 잘해서 칭찬해주는 줄 알고 오히려 유세다.



얼마 전 중국에 한 초등학생이 등교 중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납치되었다가 간신히 탈출했다고 경찰에 자진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진술을 이상하게 여긴 경찰이 집요하게 추궁하자 당시 10살짜리 아이는 학교 숙제를 하지 못해 거짓으로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숙제의 부담감이 얼마나 컸길래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참으로 안타깝다.



전 세계가 학생 숙제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지는 오래되었다. 아이 숙제가 너무 많다고 학교에 편지를 보낸 엄마가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스페인에서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주말 숙제를 거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미국 초등학교 현장에서는 ‘숙제 효과’에 대해 열띤 논쟁도 있었고 숙제에 대한 찬성파와 금지파의 학부모들이 날카롭게 대립한 적도 있다. 숙제의 부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숙제는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공부습관을 키워주고 효과적인 시간관리를 도와주며 동기부여를 준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 숙제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꿈꾸며 으름장과 회유의 고급 스킬을 버린다. 시종일관 옆에 같이 앉아 '버티기 모드'로 나의 의지를 아이에게 전달한다. 이래야 딴짓거리를 안 한다. 엉덩이와 꼬리뼈가 너무 아프다. 피하지 말고 꿋꿋하게 감당하는 어른의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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