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두 돌 지나 세 살이 되었다. 이젠 데리고 다닐만하지 않을까 싶어 가족여행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그건 완전히 내 착각이었다. 우선 집 아닌 바깥에서 일정을 보내다보니 애들 패턴이 완전히 꼬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갑자기 차에서 졸기 시작했다. 낮잠을 자야할 시간에는 쌩쌩하게 움직이며 놀았다. 덕분에 어른들도 잠시 눈 붙일 새도 없이 움직여야만 했다. 어차피 안 자는거 물놀이나 하자 싶어 수영장에 데려갔다. 처음엔 낯설고 무서워하다 곧 깔깔대고 이얍이얍 물을 튀겨대며 신나했다. 문제는 이제 추우니 그만 들어가자해도 딸래미가 절대 안 들어간다고 짜증을 내는거였다. 결국 1차로 들어가는걸 실패하고 다시 물에 들어갔다. 2차 시도에서도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 이럴 때면 마음 읽어주기고 뭐고 정신이 쏙 빠진다. 우리 입장에서야 고집이지만 딸 입장에서는 더 놀고픈데 못놀게 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분노겠지. 역지사지는 늘 그 순간이 지나고나서야 하게 된다.
그렇게 낮잠도 안 자고 열심히 놀던 친구들은 결국 저녁먹으러 나가는 길에 갑자기 잠들어버렸다. 덕분에 잠든 아이들을 안고 저녁을 먹어야 했다. 아이들 패턴이 꼬이고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않으니 뭘해도 심란하고 마음이 복잡했다. 언제 뭘 해줘야 될지 가늠이 가지 않아 답답하고 좌절스러웠다. 결국 밤잠을 재우는 것조차 잘 되지않았다. 실패하고 방에서 나오는데 정말 1부터 10까지 망한 것 같은 절망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집이 아닌 곳에서 새로운 활동을 하니 들뜨고 평소 같을 수 없는게 당연한데도 그랬다. 고집을 부리고 있는건 사실 나였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이 고집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다. 7시부터 일어나 바람 쌩쌩부는 바깥으로 나가자는 딸의 요청에 순순히 따라주었다. 뜬금없고 상황에 맞지 않아도 그렇게 했다. 다행히 바람은 차지 않았지만 머리가 정신없이 날리는 날씨였다. 아이는 같이 걷다 바람이 세게 불때마다 안아달라며 품에 파고들었다. 그렇게 나에게 바짝 붙어 있는 아이를 안을 때마다 어딘가 벅찼다. 바람부는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다. 아이와 별다른 말없이 손만 잡고 걷는데도 함께 즐기는 듯한 기쁨이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 이 우당탕탕 여행을 온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내가 아이를 내 뜻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존재가 아닌, 그냥 지금 여기에 함께 하는 존재로 보는 순간이었다.
그 뒤에도 물론 우당탕탕은 계속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그제야 마음이 놓이며 훅 피곤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뭔가 느끼고 돌아왔다. 내려놓을 수 없을 것 같은 걸 내려놓았을 때의 그 가볍고 편안한 느낌을. 마음수련이 별건가. 평소에 내려놓지 못하는 걸 내려놓는거지. 아이들과의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마음수련이었다. 철저하게 내 뜻대로 되지않는 상황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내가 여행 내내 싸웠던 건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세워둔 기준이었다. 그걸 억지로라도 내려놓으니 적어도 싸움에 에너지 드는 일은 없었다. 나처럼 어설프게 내려놓지 못해 고통 받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와의 여행을 추천할 것이다. 집 밖이라는 통제불가한 상황과 들뜬 아이들이 시원하게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