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아들에게 부탁을 받았다

나한테 화내지 마세요

by AskerJ


어젯 밤, 태어난 지 3년이 된 아들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엄마 사랑하는데.. 나한테 화내지 마세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황급히 돌이켜보니 오늘따라 피로감이 심해 평소보다 분명 짜증과 화를 더 냈었다.

그럼에도 그냥 조용히 수긍하고 사과하면 될껄 "알았어.. 엄마도 화 안내도록 노력할게."하고는 "아들도 엄마 말 잘 들어줄거지?" 하고 꼭 뒤에 붙이는 한 마디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못났다. 은연 중에 '엄마가 화낸 건 너가 말을 안들어서야.'를 전하려는 책임전가가 적나라하게 들어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아이에게 내는 화는 99%가 내 몫이다. 그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게 문제지만...


딸보다 상대적으로 관계지향적이고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아들이라 더 임팩트가 컸던 것 같다. 자기에게 내는 화 뿐만 아니라 딸에게 내는 화에도 딸보다 더 크게 반응하는 아들이다. 미안함은 꼭 화를 낸 다음 순간에 몰려온다. 머릿속에서는 화보다 훨씬 가볍게, 아이들이 받아들일만한 강도로 할 말을 하는 내가 있는데 그게 실제로 튀어나오기가 참 어렵다. 매일 '내일은 잘 해봐야지.' 하며 내일의 나로 미루고 잠드는 밤이 이어진다. 그나마도 실컷 자책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더 효과적이어서 택한 방법이다.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가벼워졌으니 아이들도 조금 더 가볍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내일의 나는 실제로 조금 더 잘해내기도 하고, 더 못해낼 때도 있다. 최근에는 분명 육아에 심적인 여유가 생긴 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더 자주 귀여워보이고, 심지어 울고불고해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원래 그런 여유가 있는 엄마였다면 좋았겠지만, 나는 아이들이 짜증내고 울면 바로 예민해지는 엄마였다. 정말로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어야만 귀여워해주는 철저히 조건중심적인 애정을 주는 엄마. 그런 내가 아이의 우는 모습에도 웃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니! 그 누구보다 스스로가 제일 감격스러웠던 변화였다. 좋았어 계속 이대로만 하자! 그리고 그 변화를 느낀 지 며칠도 되지 않아 아들에게 '화내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 느꼈던 감격이 참 무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차라리 그냥 화내지 말아달라고만 했으면 좀 덜 미안했을 것이다. 그냥 부탁한 것도 아니고 '엄마를 사랑하는데...'까지 붙인 한층 애절한(?)부탁이라 곱씹을수록 더 미안해졌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최근에 내가 아들에게 한 말을 따라한건가 싶기도 하다. "나는 유성이가 짜증을 내도 사랑하는데... 기분은 안좋아."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와중에 내가 했던 말을 응용한 아들이 신기한 나... 뭘 따라했든 내가 화내지 말았으면 하는 아들의 마음은 명확했다.


아들은 관계지향적이고 섬세한만큼 곧잘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곤 한다. "그러면 나 속상해." 라든지, 내 입장에선 좀 뜬금없지만 밥먹다가 갑자기 "기분이 나빠"라고 한다던지... 그 마음을 전부 알아주거나 공감해줄 순 없지만 굳이 그 섬세한 마음에 엄마가 생채기 하나를 더 내진 말아야 하지 않나. 한편으로는 아이가 그렇게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얘기해주는게 참 고맙다. 매일 다짐하면서도 순간순간 안이하게 내 감정대로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에 그 누구보다 큰 경각심을 주니 말이다. 나를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기회를 주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줄 때 정말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화내지 마세요' 라는 요지의 육아책 백 권 읽는 것보다 어젯 밤 아들의 부탁 한 마디가 나에겐 훨씬 효과적이다. 오늘 하루 계속 내 마음을 맴도는 아들의 말... 곱씹을수록 미안함이 솟아오르는 말. 앞으로는 이런 부탁을 안 들을 자신은 없지만 그 텀이 조금이라도 길어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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