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이 되기 위해 시어머님을 소환했다

주부가 휴가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들

by AskerJ


남편이 3년을 만근하고 안식월을 얻었다. 우리는 이 안식월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몇 달 전부터 얘기해왔다. 한 달을 통으로 쉴 수 있게 되었으니 우선 그 중 2주는 제주살이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남은 2주는? 사실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닌 남편의 안식월이니 그가 알아서 쓰겠지 했다. 그런 생각이 바뀐 건 지인이 한 말 때문이었다. "남은 2주는 한 주씩 번갈아 가며 쉬어요~ 안정적으로 일해서 안식월을 얻을 수 있도록 둥이엄마가 육아와 집안일을 해서 기여한거잖아!" 어 그러고보니 그렇네...? 그렇게 나는 남편의 안식월에 나도 휴가를 가지기로 결심했다. 순진하게도 남편 역시 내 휴가를 선뜻 지지해주길 기대하며...


안식월을 2달 앞두고 투잡을 시작하게 된 남편은 심적으로 그닥 여유롭지 않았다. 자신은 안식월에도 회사를 쉴 뿐, 다른 일은 계속 해나가야하는데 와이프는 휴가를 가겠다고 주장하니 좀 어이없어 했다. 그렇다고 절대 가지 말란 것도 아니고 '나는 갈 여유없으니 혼자 갈테면 가라'는 식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도 혼자만의 휴가를 떠나고 나도 (마음 편히) 나만의 휴가를 떠나는 시나리오였어서 당황스러웠다. 그 시나리오를 내밀자 남편은 오히려 '자기는 사실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데 왜 굳이 그 때로 가겠다고 하냐. 그리고 나는 혼자 떠나기 싫다는데 왜 나까지 떠나라고 하냐.'며 짜증스러워했다. 그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는 남편이 주양육자이자 주부인 내 자리에 대해 아예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아니, 내가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주양육자이자 주부인 (그리고 프리랜서인) 내가 1박 이상 자리를 비우기 위해선 대체자가 필요하고, 그 대체자는 당연히 어머님 아니면 우리엄마다.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된 건 아무리 친정엄마여도 쉽게 아이를, 그것도 아이 둘을 맡길 순 없다는거였다.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날에 내가 휴가를 떠나겠다고 시어머님이나 우리엄마한테 덜컥 아이 둘을 맡기는게 언제든 가능하다니...? 그런게 진짜 가능했다면 나는 계절별로 휴가를 떠나지 않았을까. 그러기엔 나는 염치가 있는 사람이고 그만큼 뻔뻔하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주부(에 가까운) 엄마의 휴가는 뻔뻔함이 필수라는게 참 씁쓸했지만.


현실남편의 반응에 내 기대가 순진무구했다는 걸 깨달으면서도 마음이 상하는건 어쩔 수 없었다. 속상한 티를 팍팍 내며 그 날 밤을 보냈더니, 다음 날 아침 남편은 일어나자마자 나를 안아주며 "내가 미안해요. 휴가 다녀와요." 라고 했다(그래놓고서는 막상 안식월이 다가오자 자기가 그랬냐며 놀라긴 했지만^^). 어쨌든 내 휴가는 확정되었고, 확정된 이 후에도 남편의 안식월 스케줄에 따라 일정도 장소도 변경되는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나는 끝끝내 휴가를 지켜내었다. 심지어 멀리 계시는 시어머님까지 소환해가면서. 가급적 어머님이 덜 이동하시는 쪽으로 진행하고 싶었지만 남편의 일정상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어쩐지 자꾸만 나 하나 좋자고 모두를 고생시키는듯한 죄책감이 무겁고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나는 그걸 애써 무시하며 틈틈히 내 휴가를 계획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아직 제주살이 중인데 마음은 벌써 개인 휴가로 가 있는 것 같다며 놀림 반 비아냥 반 얘기했지만 그것 또한 애써 웃으며 넘겨버렸다. 자유부인이 되기 위한 여정은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부터 관철해서 실제로 가기까지 참으로 많은 심적 부담을 견뎌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그 바라던 자유부인의 시간을 보내기 직전, 몇 주간 건강하게 잘 지내던 아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전 날 밤엔 기침하다 살짝 토하기까지 했는데, 참 여러가지로 심란했다. '왜 하필 이 때...'라는 진짜 이기적인 생각을 마주하며 참담해졌다. '아이가 아파도 휴가를 떠날거야?'라는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 것만 같았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내가 안 떠난다고 해서 아이들이 갑자기 낫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하기에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중에 이 글을 우리 애들이 보더라도 나에게 "너무하다 엄마"가 아닌 "잘했어 엄마!"라고 해주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데 과연 될런지. 나도 나중에 나 아픈거랑 별개로 자신의 선택을 해나가는 아이들을 향해 "잘했어!"라고 해주면 되겠지. 그럴 자신이 있었기에 나는 떠났다. 당당히 말하지만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냥 집에 가서 아픈 애들 볼까'하는 고민을 누르고 있다. 나로서 힘껏 충전한 뒤에 돌아가는 것이 당장 달려가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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