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사랑을 할 때에는 나의 숨겨진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평소에는 잘만 감추는 나의 못난 모습들이 모나게 튀어나온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나의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나'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외려 누군가에게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일견 모순이다. 이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상대에게 관심이 간다. 상대를 사랑하게 된다. 연애생활이 시작된다. 행복하고 안정된 일상이 연속된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별이 찾아온다.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새삼 깨닫게 된다. 이상하리만치 후유증이 없다는 것을. 그토록 사랑했던 상대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사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그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사랑했다는 것을. 내가 부끄럽게 여기던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나'에서 벗어났음에 안도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모두, 나 자신을 위한 기만이었음을.
이러한 반복된 경험은 자기혐오를 낳는다. 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 없고, 상대에게도 몹쓸 짓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는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록 더욱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나'를 보고 싶어서 시작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어 사랑하는 사랑을 하고 싶다.
그래서 요즘은 보다 신중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내가 정말 상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안도감을 얻고 싶은 것인지. 그리고 스스로 보다 단단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기 위한 사랑을 하기 위해. 안도감을 느끼기 위한 사랑이 아니라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사랑을 하기 위해. 진짜 사랑을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