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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고 마시는 기획자 May 31. 2024

세상이 순대 공화국이 되는 그 날까지.

세상의 모든 순대 러버들에게 바치는 글

순대 : 순대는 한국의 음식으로, 돼지의 창자에 채소나 당면을 비롯한 각종 속을 채우고 선지로 맛과 색깔을 낸 후 수증기에 쪄내어 만든다.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인기 있는 음식이다. (출처 : 위키백과)

사실, 보기에 순대는 너무 푸근하고 한편으로는 거칠지만… 순대는 생각보다 아이코닉한 음식이다.

일단 순대가 얼마만큼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음식인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순대를 정말정말 좋아한다.

우선 순대는 잠깐 떠올려봐도 그 종류가 굉장히 많다.

찹쌀 순대, 고기 순대, 피순대, 순대 볶음, 막창 순대, 오징어 순대까지. 엄밀히 말하면 오징어 순대는 순대의 사전적인 의미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순대는 순대인 것이다.

이렇게 종류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이 다양한 종류의 순대들과 굉장히 많은 추억들도 맞닿아있다.


순대와의 찬란한 추억
 


[찹쌀 순대]

먼저 찹쌀 순대. 가장 대중적인 순대이자 순대의 기본이자 기본. 이 찹쌀 순대와의 추억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순대볶음을 정말 좋아했는데, 매운걸 먹지 못하는 아가 시절이었음에도 양념 순대 볶음을 정말 좋아해서 엄마가 항상 간식으로 준비해 놓곤 했다. 덜렁거리던 어린 시절, 순대 볶음을 먹다가 영어 학원 버스를 놓쳐서 혼나고 다시 식어서 퉁퉁 불은 순대 볶음을 먹은 적도 있다.

그리고 초중생 시절, 우리 모두가 그랬듯 나도 학교가 끝나고 삼천원짜리를 들고 순대와 떡볶이를 사먹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맛없는 분식집에서 순대랑 튀김을 먹다가 심하게 체하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찹쌀 순대를 매일 먹었고, 체한 뒤로는 순대를 입에 대지도 않다가 몇 달이 지나 고기 순대부터 입에 대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극복해 버려서 없어서 못먹는 음식이지만.


[고기 순대]

고기 순대야 뭐 내가 느끼기엔 기본적인 순대의 느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찹쌀 순대에서는 약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 대학 시절 후문에는 정해진 요일마다 순대 트럭이 왔는데 울이는 그걸 후문 순대(줄여서 후순)이라고 불렀다. 모둠 순대를 주문하면 고기 순대, 김치 순대, 야채 순대를 주셨는데 사장님이 순대 썰어주시는 걸 기다리면서 농담 따먹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시험기간 훌륭한 밤샘 메이트가 되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말해 뭐해. 나는 순대국밥에 고기 순대가 아닌 찹쌀 순대가 들어가면 먹지를 않는다.

그러니까 순대국밥하면 고기 순대. 고기 순대하면 순대국밥이다. (속초 아바이 순대국밥처럼 독특한 경우는 제외한다.) 나랑 친한 사람들이라면 내가 순대 국밥에 진심이라는 것을 잘 아는데, 회사 근처에 내가 좋아하는 순대국밥집이 있어서, 나와 친한 직원들은 자주 순대국밥집에를 갔다. 고객사 때문에 화가나는 날에도, 팀장님 때문에 속상한 날에도 다데기가 풀어진 쫀득한 국물을 먹으면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조금 더 속상한 날에는 순대도 한접시 같이 나오는 순대 정식을 시켰다.


[막창 순대]

막창 순대는 흔하지 않아서 잘 먹을 수 있는 순대는 아니지만 내 최애 순대이다.

막창 안에 순대 소를 넣은 것이 특징인데, 을지로의 산수갑산에서 처음 맛봤고(산수갑산이 막 페북 맛집으로 떠오를때였다.) 부산 공순대에서 두 번째로 맛봤다.

순대 러버로서 공순대에서 처음 막창 순대를 먹었을 떄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배가 불러서 순대 전골은 못 먹고 막창 순대 한 접시를 포장해서 왔는데 푹 삶은 막창 순대가 돼지 잡내 하나 없이 부드럽고 고소했다.(근데 나는 돼지 냄새도 어느 정도는 즐기는 편이다.)

여하튼간 그 이후로는 막창 순대에 푹 빠져서 이른바 순켓팅(순대 티켓팅)까지 해서 구워 먹는 막창 순대(추천 완전 추천)를 주문해 내 집들이 음식으로 차린 적도 있다.


[오징어 순대]

그럼 오징어 순대는 또 어떤가. 요새 들어서야 뭐 오징어 순대가 속초의 대표적인 관광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중앙 시장에서건, 또는 요새 인스타에서 핫해진 누룽지 오징어 순대건(오징어 순대를 노릇노릇 누룽지처럼 빠작하게 구운 것) 다들 쉽게 오징어 순대를 접하지만 나는 속초가 고향이라 어릴때부터 오징어 순대를 접했다. 난 모든 종류의 오징어 순대를 사랑하지만, 지금도 아빠는 계란물을 묻힌 오징어 순대는 양산형 순대라면서 계란물 없이 푹 삶은 오징어 순대만을 오징어 순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만큼 아빠도 오징어 순대에 진심인 사람인 모양. 어찌됐건 이러한 이유로 우리집에서는 계란물 없이 삶은 오징어 순대만을 먹고, 내가 지인들을 속초에 데려갈 떄는 대포항에서 파는 누룽지 오징어 순대를 먹는다.

오징어가 많이 나는 속초인만큼, 참 속초스러운 메뉴인데다가 또 순대라서 이 친구도 내 최애 순대 중 하나다. 근데 뭐 이쯤 되면 최애가 아닌 순대가 없는 정도. 속초 살던 당시 13층인가 15층에서 살았는데, 밤마다 밤바다를 비추던 오징어 잡이배의 불빛도 떠오른다.여러모로 참 속초스럽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추억의 많은 부분들이 여러 종류의 순대들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순대는 국밥으로도, 전골로도 먹을수 있지만, 순대 그 자체로도 완벽한 음식 그 자체다.

곁들여진 다른 밑반찬 없이 순대 자체로도 하나의 음식이란 얘기다. (물론 젓갈, 소금, 쌈장, 초장 등 지역마다 다른 갖가지 소스는 예외.)

이런 순대가 '아재 음식'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모든 세대들에게도 다가갈 수 있는 음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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