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책방] 나는 왜 행복해야 하는가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by 연두의 무한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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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저만치서 매복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1. <생의 한가운데> 주인공, 니나 부슈만은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왜 행복이어야 하냐고.

나 역시 그것이 행복이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생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불행의 얼굴을 하고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행복의 가면을 쓴 불행도 있다. 아니, 애초에 어쩌면 그런 것은 정해져 있지 않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행복이 내게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내 인생에 펼쳐진 미래는 행복과 꽃길이어야 한다고.


행복한 한 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런 덕담과 새해인사도 그런 막연한 기대 때문인 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거나 ‘행복하길 바라’라고 했을 때, 심각한 얼굴로 (절대 따지려는 게 아님) ‘내가 왜 복을 많이 받아야 되는데?’ 라거나 ‘내가 왜 행복해져야 하지?’라고 묻는다면 상대는 무척 불쾌하겠지. 그리고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질문은 상대에게 물을 것이 못된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향하는 질문이어야 한다.


나는 왜 행복해져야 하는가. 하지만 절대로 삶은 행복만 기다리는 건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행복 의무증'에 걸린 것처럼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는 있습니다." "행복하길 바라요. " "행복한 삶을 위해" "행복하세요" "행복한 나날 되시길...."

하지만 그 '행복'이라는 단어가 나는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인생에는 불행도 저만치서 매복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각오해야 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불행은 없다. 어딘가에 꼭 숨어있다. 그리고 행복도 불행도 아닌 고만고만한 일들도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고만고만한 일들은 그냥 지나가고 잊히기 쉬우나 되돌아보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니나의 비장하고 결연하고, 냉정한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무슨 권리로 나는 내가 이 세계에서 예외일 것을 기대하는 것인가. 아무런 소망도 이뤄지지 않는다. 왜 내 소망은 이루어져야 하는가.’


삶을 직시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뼈 때리는 질문이다. 인생에서 때로는 체념과 포기가 미덕이 될 때도 있다. 막연한 꿈과 기대보다는 그 편이 낫다. 그럴 때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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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책이라니


2. 대학시절에는 <생의 한가운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아마도 전혜린이 번역을 해서 이 책을 처음 접했던 걸로 기억한다. 문체가 너무 딱딱하고 건조했다. 루이제 린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니나라는 캐릭터에 공감할 수 없었고, 그녀의 세계가 무섭기까지 했다. 몇 번 읽다가 실패했다. 그러다 작년 연말에 비로소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마치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이제야 내가 삶을 조금이나마 보게 된 것일까,


<생의 한가운데>를 떠올렸을 때 스며드는 이미지는 모호한 안개와 어두움, 새벽, 죽음, 폐허, 웃음기 없는 얼굴, 냉정한 응시 등이다.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 독일이다. 인간에 대한 회의와 끝없는 질문, 탐구,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잔인했던 시절, 내일을 기약할 수 없던 시대였다. 그런 시기를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르지만, 이 책은 인간의 삶과 죽음, 살아간다는 것, 삶이라는 것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또 묻는다. 니나 부슈만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이 소설은 너무 건조해서 바삭거리고 황량하지만, 동시에 생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모순이다. 삶이 만만하다거나 삶이 너무 시시하다고 느껴질 때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이다. 이 버석버석한 책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캐러멜 마끼아또 같은 행복은 아니다. 그저 왈칵 눈물이 난다. 나는 지금 생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고 느낀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이 생의 한가운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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