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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의 무한책임 Feb 02. 2022

[한줄책방] 노는 데 이유 없다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아무 이유없이 놀 줄 알아야 한다 


1. 며칠 전, 친구와 <해리포터>에 보면서 왜 우리 예술에는 저런 상상력이 없을까, 라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외국의 문학, 영화를 보면 (내 기준으로는) 황당하다 싶을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는 소재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 
 

나는 그 원인을 딴 생각을 할 여유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 근현대 문학만 보아도, 대개는 현실에 기반을 둔 작품들이 많았다. 나라를 뺏긴 설움에 억압받고 수탈당해야 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해방이 되자마자 찾아온 남북이념의 대립과 좌우 이데올로기의 편 가르기, '잘 살아 보세'라는 기치로 온 국민이 하나 되어 똘똘 뭉쳤던 새마을운동, 살벌했던 독재정권, 그리고 민주화운동……. 그 와중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산업의 기술까지. 정말 우리는 숨 돌릴 틈 없이, 딴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왔다. 그러니 문학이나 영화 등 예술장르도 대부분은 식민지배의 아픔이나 이념의 대립과 갈등, 이산의 고통, 민주화의 헌신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따라서 ‘놀이’라는 것도 쓰잘데기 없는 일로 치부됐다. ‘노느니 일한다,’라는 말은 노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얼마나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유익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놀 줄 알아야 하건만, 놀이를 할 때도 대가와 보상을 바라고, 남을 이겨야하고 경쟁해야 한다. 물론 그럴 때 스릴이 넘치긴 하지만, 놀이의 순수성은 사라진다. 놀이가 주는 유희의 순수함, 기쁨을 떠올리면 역시 어렸을 때 놀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그 짧은 10분 동안 아이들과 놀았던 기억. 아무 걱정도 없고, 보상이나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그 기쁨에 순수하게 몸을 맡기고 즐겼던 기억들이다.   

   

작년에는 바느질을 하면서 기쁨을 누렸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다. 바느질을 배워서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한 땀 한 땀 실을 꿰고 천을 이어붙이고 오리는 그 과정이 너무나 즐거워서 견딜 수 없었다. 기쁨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게도 아직 놀이의 기쁨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고마웠다.      


최근에는 사진 앱으로 사진 찍는 재미를 (이제야) 느꼈다. 사진앱이라고 하면 보정을 하거나 포토샵을 해주는 걸로 알았는데, 갑자기 얼굴이 네모형이 된다든지, 떠오르는 태양 속에 내 얼굴을 넣는다든지, 얼굴이 똥이 된다든지……. 이런 엉뚱한 조합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앱이었다. 처음에 딸아이들이 그런 앱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그것도 놀이가 됨을 이제야 알았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다.  

    

올해는 더욱 더 놀아야겠다. 일을 더 생산적으로 하기 위해서? 생활을 더 윤택하기 위해서?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아니다. 다 틀렸다. 노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저 즐거우니까 노는 거다. 즐겁게 노는 시간들을 더 많이 만들자.           



책읽기도 놀이가 된다 


 2.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는 장석주 작가가 1년 4계절 동안 읽었던 책들을 소개한 산문이다. 오늘 소개한 한 줄은 호이징하가 쓴 <호모루덴스>라는 책을 읽고 쓴 부분에 소개된 문장이다.


책들은 가볍지 않고, 글은 깊다. 아마도 충분한 사유의 결과이리라. 책과 책을 연결해서 읽고 해석해놓은 점, 책의 내용들을 우리의 일상이나 사회 이슈와 연결지어서 해석한 점도 재미있었다. 책을 이렇게 읽을 수 있다면 이것도 하나의 ‘놀이’가 되리라.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한다든지, 숙제를 내야한달지 공모를 한달지……. 그러한 압박감이나 의무가 아닌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쓰다보면 머릿속은 놀이터가 되고 운동장이 된다. 


지난 해, 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하루에 한 계절씩의 분량을 읽으며 밑줄도 긋고 마스킹테이프도 붙여놓았다. 그것도 나에겐 놀이다. 여기에 소개된 책 중에서 읽지 못한 책들이 꽤 많다. 리스트를 만들어서 읽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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