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강원국의 글쓰기>
나의 Q 지수는?
1. 이 한 문장을 만나기까지 내게는 아무런 질문이 없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대개는 책의 내용을 그저 받아들였다. 저자가 하는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이나 필터링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에 온전히 수긍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려니~’하는 정도로 받아들였다.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렇게 읽은 글들을 대부분 한 귀로 들어왔다 한 귀로 흘러나갔다. 남는 게 없었다. 책을 열심히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질문’ ‘생각’이 빠진 독서는 공허하다. 독서를 하고 나서의 전과 후가 같다면 그 독서는 잘못된 것이라고들 한다. 물론 책 한권을 읽고 난 후 천지개벽할 정도의 변화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다만, 가슴 속에 작은 질문이라도 품고 생각이라도 틔울 수 있다면 그 때의 독서는 유의미하다 할 수 있다.
질문은 생각하는 힘이다. 그리고 생각은 질문하는 힘에서 나온다. 내 마음속에 Question의 Q가 있어야 다음 생각이나 행동의 Q사인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능력을 Question Quotient라고 한다. Q지수다. Q지수가 높아야, 나만의 생각과 질문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끝내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생각과 질문이다. 그 질문은 때로 글을 쓰면서 얻기도하고 해결되기도 하고 더 큰 의문이나 질문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 생각과 글의 밀도도 높아지고 볼륨도 두터워진다.
오늘 나에게는 어떤 ‘질문’과 생각들이 있는가.
나는 오늘도 나를 책상에 갖다놓는다
2. 앞서 인용한 구절에서는 생각하는 독서에 대해서 쓰긴 했지만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글 쓸 때의 마음가짐과 습관들이기부터 글감 찾는 법, 효과적인 글쓰기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씌여있다. 무엇보다 쉽게 씌여져있다. 나는 이 책이 쉽게 씌여져서 가장 좋다. 밑줄 친 몇개의 문장을 인용해보겠다.
*먼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다. 이기적인 글쓰기를 해야 한다.(p.39)
*매일 쓰니까 어렵지 않다. 가끔 쓰는 게 어렵다.(p.47)
*남의 생각을 빌려 자기 생각을 만드는게 독서다.(p.79)
*글 한 편을 읽고 자기만의 감정이나 느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다양한 푼트쿰을 일으키는 글이 좋은 글이다. (p.97)
*믿고 집중해서 반복하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런 언어 암시를 쿠에이즘 또는 쿠에법이라고 한다. (p.205)
*막상 쓰기 시작하면 불안감이 잦아든다. 그 이전의 생각은 부질없는 걱정이 된다. 한발 들여놓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p.234)
*글쓰기는 고치기 승부다.(p.26)
*"지식의 영토가 넓어지면 그 넓어진 영토를 따라 해안선이 길어지고 길어진 해안선을 따라 모든게 궁금해진다."(p.327)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간에 일단 쓰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일단 써봐야 잘 쓴 글이든 못쓴 글이든 탄생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생각만큼 쉽게 써지지 않는다. 잘 쓴 글은 고사하고 그저 평범한 한 문장을 쓰기 어려울 때도 많고 , 한 문장을 쓴 뒤 (이제 내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더 이상 글을 진전시키지 못해 쩔쩔매는 경우도 많다.
내 직업은 방송작가다. 방송작가인 만큼 나름 글 쓰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하고 섭외하는 일에 더 친숙할 뿐이었다. 물론 섭외 메일을 쓴달지 기획서를 쓰거나 프로그램 원고를 쓰는 일도 모두 ‘쓰는 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글과 아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나만의 생각이라는 게 빠져있었다. 내 생각이 없기에 그것은 진정 내 글이라 할 수 없었다.
나만의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질문하고 생각하다 마침내 결론을 얻었다. 나는 ‘내 생각’이라는 게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이 없으니, 쓸 수 없었다. 수사법이나 표현력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써야 한다는 게 없었으므로 글을 못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한줄책방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내 생각을 기르기 위해서다. 나는 일단 나를 책상 앞에 갖다 놓는다. 잘 쓰지 못해도 일단 써보자. 쓰는 습관을 들여보자. 그런 생각으로 오늘도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더욱 잘 쓴 글을 쓰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쓴 글을 다시 읽어보고 고쳐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생각을 더 확장시킨다. 더욱 많은 Q를 확산해가면서 내 생각을 넓혀갈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를 책상 앞에 갖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