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
귀찮을 수는 있지만 너무 오래 머물지는 말자
1. 귀찮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기력한 감정이다. 귀찮다, 는 사전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고 성가시다’라는 뜻이다. 이 사전적 정의를 보기 전까지 나는 단순히 귀찮다 = 하기 싫다, 로 인식했는데, 사전적 정의를 읽고서야 아하, 그렇구나 생각했다. 귀찮다는 것은 성가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귀하지 않다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살아가면서 겉으로 불쑥 혹은 속으로 얼마나 많은 ‘귀찮다’를 내뱉고 있는가. 귀찮다는 말에는 에너지가 없다. 차라리 ‘싫다’ ‘밉다’ ‘필요 없다’는 부정적인 말에도 나름의 에너지와 말하는 사람의 의지라는 게 보이지만 ‘귀찮다’에는 그저 귀찮음만 덩그러니 있을 뿐이다. 대화로 치자면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대화.
귀찮다, 라는 생각이 한번 파고들면 여기저기 다들 귀찮은 것투성이다. 마치 부식되어 부슬부슬 떨어지는 콘크리트의 건물처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움과 허약함이 있다. 귀찮다를 연발하는 사람 치고 얼굴이나 행동에 생기를 띄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나 역시 귀차니스트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해야 될 일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귀찮음’ 불이 켜진다. 현재 내 투두 리스트 중에 귀찮은 일들은 1. 자동차 정기검진 받으러 가는 일 2. 가스레인지 청소하는 일, 3. 오래된 멀티탭을 바꾸는 일, 4. 보험설계사를 만나서 다시 상담하는 일 등이다.
하지만 일단 시작하면, 생각보다 그리 귀찮지 않다. 어찌어찌해서 그 일을 해버리고 나면, 그 일이 그렇게까지 귀찮은 일이 아니었음을 알고 좀 허무할 때도 있다. 그러고 보면 귀찮다는 것은 습관이고 가장 쉬운 합리화가 아닐까.
하지만 귀찮은 것들은 역시나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그 무기력함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분이 꿀꿀할 때는 일단 걸어보자
2. 약 3년 전,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약간의 무기력과 슬픔, 막막함을 견디며 살고 있었다. 일단, 나는 내 삶에 자신이 없었고 나를 믿지 못했다. 내가 지금껏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는 위험한 시기였으면서 나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완만한 우울증 같은 것을 앓았던 것 같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 어떻게 이 책을 구입하게 됐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구입한 날짜는 확실하다. 책 속표지에 2018년 12월 24일이라고 쓰여있었고 ‘나에게 주는 선물. 잘 걸어왔다. 응원한다’라고 쓰여 있다. 내가 쓴 메모다. 나는 짐짓 씩씩한 척 썼지만, 사실 저 말은 바람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잘 걸어갈 수 있길, 내가 나를 응원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책을 읽고 용기와 위로를 얻었다. 이 책은 걷는 방법이나 기술, 요령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걷는 일이 자신에게 준 긍정적인 효과와 마음가짐, 자신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선한 영향력에 대해 쓰고 있다. 하정우는 하루에 10만 보를 걸을 때도 있다고 하니 그렇게 걷다 보면 무념무상에 이를 것 같다.
나도 책을 읽는 동안 틈틈이 걸어보았다. 예전에도 마음이 심란하거나 힘들 때면 집 근처 산책로를 몇 바뀌 씩 돌았다. 이내 기분이 상쾌해지는 효과를 이미 톡톡히 느낀 터라, 그의 말에 적극 공감했다. 다만 그 효과는 알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몸이 잘 안 움직여진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럴 때 또 ‘귀찮다’는 망상이 또 들지만 일단 머리에서 그 생각을 치우고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한다.
이 책을 오랜만에 꺼내어 책장을 넘기는데, 밑줄 친 글귀를 읽었을 뿐인데도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상쾌하다. 바람이 불어온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다행히 지금껏 잘 걸어왔다고. 그러니 앞으로도 잘 걸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