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너무 멀리 가는 게 아니었다
1.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인생이었다. 평생을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산 산티아고에게 바다는 이 같은 진실을 알려주었다.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산티아고는 바다에 나간다. 꿈속에서 아프리카의 사자도 보았다. 산티아고는 근육을 만들고 지혜를 길러서, 마침내 대어를 낚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대어를 낚은 환희, 늙은 노인의 인생 찬가로 끝났다면 이 소설은 명작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대어를 묶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바다를 가로질러간다. 하지만 그 대어를 노리는 사나운 물고기들의 피해와 공격은 너무나 고달픈 것이었다. 산티아고는 대어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대어를 잡을 때보다 더 지독히 고통스러워한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후회한다. 너무 멀리 나가는 게 아니었다고. 너(큰 다랑어)를 잡는 게 아니었다고.
사람들은 ‘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대어를 낚을 수 있는 확률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늙어 죽는 순간까지 그 꿈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보상과 대가라는 것이 따른다. 내가 대어를 낚음으로써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 말은 얼핏 절망스럽다. 하지만 이런 말도 있다. 나쁜 일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그가 바다의 끝에서 본 것은 무엇일까
2. 최근에 친구와 바다로 여행을 갔다. 우리는 바다가 잘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바다에 작은 배 한 척이 떠있었고, 나는 갑자기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탔을 배는 그보다는 훨씬 큰 것이겠지만 나는 그 소설이 떠올랐다. 그런데 소설의 결말이 가물가물했다. 나는 노인이 대어를 가지고 오던 중, 사나운 상어와 물고기들의 습격을 당한 나머지, 고기를 버리고 빈 배로 돌아왔다고 기억했고, 친구는 노인이 살점이 다 뜯겨나간 텅 빈 등뼈만 끌고 돌아왔다고 했다. 물론 친구의 기억이 맞았다. 나는 그날 집에 돌아와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어보았다.
노인은 왜 그 대어를 버리지 않고 돌아왔을까. 왜 끝까지 그 빈 껍데기나 다름없는 뼈다귀를 가지고 왔을까.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까.
<노인과 바다>는 읽을수록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히 운명 앞에 굴복하지 않고 인생의 파도를 맞서 싸운 한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인의 한탄, 아쉬움, 후회, 무력함...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체념이 담겨있다. 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짧은 문장들은 몇 번을 곱씹어 봐도 맛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
‘모든 일은 빈틈없이 준비해둬야 해. 그래야 운이 왔을 때 놓치지 않지.’ p.36
‘지금 다른 고기를 잡으려다 큰 고리를 놓치면 그게 더 큰 손해지.’ p.58
‘네 놈이 버티는 한 나도 버틸 수 있다.’ p.60
‘사람들이 뭍에서 그 징조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 봐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p.70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파멸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패배하지는 않아.” p.121
“차라리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어. 고기를 잡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걸.”p.129
“고기야, 이렇게 멀리 나오는 게 아니었다. 너나 나를 위해서 말이야. 미안하구나.” p.130
“너무 멀리 나가는 순간 이미 운을 놓쳐버리고 말았어.” p.137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러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살아가면서 용기보다는 체념을 더 자주 경험한다. 자신감보다는 무기력에 더 친숙하다. 모든 자기 계발서와 지침서들은 용기를 갖고 자신을 믿으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비관적이고 어둡고 잔인한 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인정하는 것이 소설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자기 계발서보다 더 좋아하는지 모른다.
<노인과 바다>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헤밍웨이의 인생과 말년을 떠올리게 된다. 내게는 산티아고가 헤밍웨이로 보인다. 노벨문학상까지 받고 온갖 부와 명예를 누린 그였지만 끝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거두었다. 그가 왜 그런 결말을 택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그동안 써왔던 글에 대한 참담함일까. 소설에 애정을 갖지 못하는 자신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글 때문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헤밍웨이는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산티아고는 너덜 해진 몸으로, 허울뿐인 상처뿐인 영광을 들고 자신의 바다로 돌아온다. 그에게는 어린 친구 마놀린이 있다. 마놀린은 먼 크고 넓은 바다를 동경하는 꼬마다. 산티아고의 유일한 친구이자 산티아고 분신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꿈의 원형이다. 마놀린이 있는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에 산티아고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다시 큰 대어를 낚기 위해 바다로 나갔을까. 아프리카의 사자 꿈을 꿀까.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야구 경기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마놀린에게 대어를 낚았던 경험을 들려주는 일만은 멈추지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그곳이 그의 바다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