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의 무한책임 Feb 20. 2022

[한줄책방] 그림자노동에서 나온 '엄마의 집밥'

이라영의 <정치적인 식탁> 


엄마의 집밥을 포장하는 이는 누구인가  


1. 이 한 줄은 이 책의 요지를 잘 나타낸다. 이 책 뿐 아니라 우리가 현재 먹는 밥과 한 끼의 식사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너무 일상적이고 무덤덤한 일상의 한 조각이어서 대부분의 사람은 한 끼 식사에 별로 관심이 없다. 아니, 식사에는 관심이 많다. 식사를 만드는 주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얘기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대개 여성, 엄마의 몫이다. 엄마의 집밥, 어머니의 소울푸드...등의 수식어로 엄마들의 식사 노동은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하게 포장되어 왔던가. 물론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식사 준비에 허비되는 여성, 엄마의 노동을 너무나 당연히 여긴다는 것이 문제다. 평생을 부엌에서 동동거리며 식구들을 식사를 위해 거친 땀을 흘려도 대부분은 집안의 냉장고와 같은 붙박이 노동, 그림자 노동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생각해보면 한두 달도 아니고, 1~2년도 아니고 자그마치 평생이다. 징그러운 시간이다. 여성들은 결혼 후 제 부엌을 갖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야 한다. 걱정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장을 봐오고, 음식을 장만해서 물리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한다. 먹고 난 뒤의 뒤처리들은 또 어떠한가. 늙어죽을 때까지 이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한다.      


이러한 노동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은 ‘아빠들의 법’이다. 가부장적 질서다. 식구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들의 노동을 따뜻한 모성애로만 바라보지 말자. 식구들의 건강,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편안한 일상과 안녕을 보장받고 싶어 하고, 누리고 싶어 하는 누군가의 막강한 이기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왜 화려한 여성 셰프들은 없나 


2. <정치적인 식탁>은 한 끼 식사에 내포된 수많은 여성들의 노동과 고통, 사회적인 강요, 억압을 고찰한 책이다. 그림이나 문학작품, 역사적 사건에 나타난 여성들의 노동, 노동자의 수고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서적으로 읽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평생의 식탁을 책임져온 사람이 누구였는가. 너무나 당연히 되는 일상을 위해 시간과 노동을 바쳐야 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려보라. 대부분은 여성이고 엄마이다. 왜 남성이면 안 되는가. 왜 아빠가 식사를 준비하면 안 되는가. 그 근본적인 질문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식사를 비롯한 가사노동에 담긴 남녀 차별을 명확히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에는 여성 뿐 아니라 장애인, 노동자, 동성애자 등 우리사회에서 외면 받고 차별당하는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음식을 통해 바라본 차별과 억압의 현실. 그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읽다보면 내가 무심코 먹는 식사와 음식들 앞에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이 한 끼 식사의 고마움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고마움보다는 그들의 수고로움과 부당함, 고통을 직시하고 그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조금이나마 바꿔나가려는데 있다.     

  

미디어에 비춰진 성공한 셰프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화려한 여성 셰프를 본 일이 있는가. 오랜 세월 동안, 티도 나지 않는 그 무수한 ‘한 끼’를 만들어온 것이 여성들인데도 말이다. 그 남성 셰프들을 먹여 살린 것이 노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엄마들의 밥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줄책방] 내 마음에 건조주의보가 뜰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