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내가 처음으로 ‘내 글’을 썼던 날
1. 어린 시절에 글쓰기는 대부분 과제나 누가 시켜서 한 것들이었다. 내가 아마도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내가 스스로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싶다. 글은 읽기보다는 좀 더 주체적인 내가 있어야 가능하다. 글은 늘 생각이라는 것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나만의 생각이 없어서가 아닐까.
그러나 내가 글쓰기를 했다고 해서 그게 진짜 글이었는가 싶으면 그것도 아니다. 단순한 넋두리이자 일상의 기록에 그쳤다. 물론 그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 진정한 글은 내 자신의 생각을 바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든 현재를 뒤집든 어떤 역동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에너지가 늘 꿈틀거렸던 여성들은 그 에너지에 소진되지 않기 위해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그래서 그 글은 버지니아 말대로 누구의 칭찬 따위, 누구의 부탁으로 쓰거나 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누가 욕을 하고 비난해도 쓰인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다. 쓰일 수밖에 없는 글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개인적, 사회적 제약들이 그녀들의 글쓰기를 막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조건들과 제약들을 뚫고 올라온 여성들의 글쓰기는 위대하고 선명하고 핏빛처럼 붉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리라
2. 장영은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에서 글쓰기로 한계를 극복한 여성 25명의 삶과 철학, 글 쓰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예전에 어느 팟캐스트에선가 장영은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이 책을 쓴 계기와 관련, 해마다 돌아오는 여성의 날(3월 8일)에 여성과 글쓰기에 관련된 글을 한 편씩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한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경향신문에 연재된 걸로 알고 있다.
꼭 위대한 여성 작가, 철학자만이 글을 썼던 건 아니었다. 요즘 지자체마다 대부분 하고 있는 여성 문해교실을 보면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이렇게나 많나 싶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채 살았다고 해서 그들의 인생을 불행하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읽고 쓰기가 있었다면 그녀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생각하면 아쉽고 안타깝기만 하다.
장영은은 자신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외할머니가 남길 글 ‘가시나니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글을 쓰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작가의 외할머니 역시 가부장적이고 봉건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못한 분이었다. 할머니의 글을 읽고 난 뒤 작가는 여성이 자기 삶을 글로 쓰는 일의 가치를 더욱 긍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남긴 한 편의 시를 유산으로 상속받았다.
우리에게는 할머니가 없더라도,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된 25명의 여성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용기가 날 것이다. 하루하루 자신의 목소리에 충실하며 그 기록을 남겼던 여성들의 이야기. 쓰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