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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의 무한책임 Mar 08. 2022

[한줄책방] 엄마와 딸이라는 '2인조'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      


1. 세상 대부분의 엄마는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고,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딸이 자신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와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딸의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들어보지 못했을 뿐이다. 간혹 엄마처럼 살고 싶은 딸 이야기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엄마들은 아마 십중팔구 (거의 99,9%) 자신처럼 살기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엄마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서로가 너무 속속 안다는 게 문제다. 아니, 속이 빤할 정도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잘 알지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자매는 서로를 잘 모른다’는 <생의 한가운데>의 첫 문장처럼.      

딸과 엄마는 서로에게 딸과 엄마라는 위치로 고립되어있다. 그래서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주어지는 차별과 억압, 강요에 대해서 서로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상대가 서로에게 한 사람의 ‘여성’이라기보다는 ‘내 딸’이며 ‘내 엄마’라는 이름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서로 각자의 주체를 여성으로 인식하고 객관화하며 이해해보려는 노력과 행동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한 여성으로서의 내 엄마의 삶, 내 외할머니의 삶, 그리고 내 딸의 삶……. 보다 더 많은 이해와 눈물, 공감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다. 내 엄마, 내 딸이라는 특별함이 서로를 묶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2인 3각 경기처럼 상대의 처지에 따라 꼼짝 못 하는 상황이 된다. 마음은 함께 가되, 서로를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더 멀리 자유롭게 함께 갈 수 있다.       



죽일 듯 미워하고 잡아먹을 듯 사랑하다 

 

2. <사나운 애착>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비비언 고닉이 쓴 자신의 엄마 이야기다. 비비언 고닉 모녀는 유대인이다. 엄마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로 활동했다. 미국에서 모녀는 비주류다. 엄마는 결혼 후 모든 걸 그만두고 가사와 육아에 전념한다. 열정적이고 똑똑했던 엄마는 남편의 사랑과 아이들의 성장만을 바라보며 한평생 헌신한다.      


비비언 고닉은 그런 엄마를 몹시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 타령’에 한심해한다. 왜? 자신은 엄마보다 많이 배웠고 깨어있는 엘리트이고 진보적인 똑똑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이 보여주는 엄마를 향한 사랑과 증오의 교차점은 수시로 넘나들며 제목 그대로 ‘사나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모녀들은 어떠할지 모르겠으나 비비언 고닉의 모녀는 무척 치열하고 뜨거웠다. 죽일 듯이 미워하고 잡아먹을 듯 사랑했다.  

    

비비언 고닉은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엄마와 함께 나이 들고, 늙어가며 가끔씩 엄마의 인생을 이해한다고 느낀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에서 그런 달달한 감상 따위는 내비치지 않는다. 그저 끝까지 엄마의 행동, 말투를 정확하게 기록했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엄마를 이해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없는 구린 구석도 분명 또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렇게 이해와 불이해, 반복과 평화를 넘나들며 엄마와 딸의 서사는 계속된다.      


나는 이 책을 서울 가는 기차 안에서 읽었다. 서울에 사는 딸아이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기숙사를 나와 자취를 하고 싶다기에 방을 알아보러 가는 길이었다. 이 책을 읽는 중간, 지금 딸아이 또래였던 내 모습과 내 엄마가 떠올랐다. 그때 엄마 나이를 헤아려보니 대충 지금의 내 나이였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오고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보는 순간에 우리 인생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p. 93 


*3월 8일은 세계여성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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