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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의 무한책임 Mar 11. 2022

[한줄책방] 지금, 나는 맨 끝이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우리는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1. 나무의 끝이 시작이라는 이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나뭇가지가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것도, 싹을 틔워 올리는 것도 늘 가느다란 연약한 줄기 끝이다. 나무 몸통에서 갑자기 굵은 가지가 튀어나오거나 꽃을 피우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가지치기를 하는 이유도 그곳이 정말 ‘끝’ 아님을, 농부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끝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덮어버리거나 묻어두었던 지난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언제나 끝이 시작이라는 말.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할 때,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다시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연약한 나무의 끝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 하나를 품은 가녀린 의지다.      



평생 내가 가지는 ‘한 구절’      


2. 이문재 시인의 시집은 늘 생각하게 만든다. 어떤 시들은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시가 있다. 어휘가 어여쁘거나 표현이 절묘하거나 아니면 시상 자체가 독창적이어서 매료가 되는 시.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가장 그늘지고 외로운 부분을 토닥토닥 쓰다듬어주는 시도 있다. 나에게 이문재 시인의 시는 후자에 속한다. 내 속마음을 그냥 꺼내고 싶을 때 이문재 시인의 시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시집 한 권 8천 원. 버리거나 누구에게 주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보고 또 보고, 음미할 수 있는 시집의 가격이다. 아니 누군가에게 줘 버렸어도, 내 마음속에 시구절 하나 가슴에 남으면 이따금 한 번씩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 시. 그런 시가 자그마치 85편 실린 시집이 8천 원이란다. 이런 밑지는 장사가 또 있나.


나는 언제나 책을 살 때면 비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들인 공과 시간, 노력. 그리고 책이라는 게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만한 가성비 높은 물건이 있나 생각한다.      


갑자기 시집 가격 이야기는 왜 꺼내게 되었나. 올봄에는 시를 더 많이 읽어야겠다. 시집을 더 많이 사야겠다. 앞으로 더 배고플지 모르는, 마음대로 시를 쓸 수 없을지도 모르는 시인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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