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별과 혐오는 어디서 오는가
1. 소수는 단지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내가 소수자라는 건, 내 존재가 그 사회에서 갖게 되는 지평의 폭이 그만큼 좁다는 것이다. 나는 확장되지 못하고 편견과 차별 속에서 왜곡된다. 중요한 건 왜곡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내가 아닌, 어떤 집단으로서 일반화된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일반화’하기를 좋아한다. 그 편이 세상을 인식하는데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집단이나 공동체의 다수에 포함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을 구별하고, 선을 가르고, 폄하한다. 그것도 부족해 혐오한다.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들... 대관절 그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그들을 혐오할 이유는 마땅히 없다. 딱히 이유가 있다면 그냥 ‘보기 불편해서’이다. 혐오할 이유가 있다고?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성소수자의 예를 들면,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그들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배척하고 혐오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근거는 부족하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믿고 싶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를 일반화해버리고, 편견을 갖는다는 건 참으로 쉽고 무서운 도구다. 우리들을 그것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함부로 휘두른다. 그것의 무서움도 모른 채.
차별은 말되, 차이는 존중하자
2.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반성을 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차별과 혐오가 내 안에도 뿌리 깊이, 어딘가에 있음을 나는 감지했다. 그리고 어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퍼컷을 맞은 기분이었다.
저자의 이야기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일부는 공감하지만 일부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아직도 내 생각과 사유가 부족해서인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비차별주의자가 될 자신도 없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와 다름, 이질적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려는 경향을 지녔다. 그것은 그것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다만, 내가 무심코 누군가에게 차별의 언어와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나비의 날갯짓만큼이나 가벼운 언행과 몸짓이 누군가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회오리를 일으키지는 않았는지 늘 끊임없이 돌아보려 노력할 뿐이다.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은 늘 내 마음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이다.
차별은 하지 말되 차이는 존중해야 한다. 누구나 다 차이는 있다. 그 차이로 인해서 불이익을 받거나 혐오, 배척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글을 이렇게 간단히 쓸 수 있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일상에서 흘러나오는 미디어, 대중의 편견, 집단의식 등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정신을 깨우며 가다듬는 일이란 매우 중요하다. 나부터 조금씩 변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