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화 <감염된 독서>
의료진의 겸손과 환자들의 감사
1.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일은 숭고하다,고 한다. 그렇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 병원이나 의료시설을 가서 의료진들을 대하면 우리의 주고받음이 숭고하다기 보다는 사무적이고 삭막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물론 모든 의료진이 다 그렇지는 않다. 그들의 심정도 이해한다. 매번 모든 환자를 숭고하고 거룩한 마음으로 대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가끔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 중에는 어처구니 없는 것들도 있다.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의료진의 노고는 말도 못한다. 그들에게 현장은 전쟁터다. 그들에게 숭고함, 겸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럼에도 겸손과 숭고함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덕목이다. 의술을 행하는 의료진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치료를 받는 환자도 겸손과 감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감정은 일방통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료현장이 아무리 치열하고 삭막하더라도 나는 사람을 보살피고 살리는 일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때로는 약과 주사의 화학적인 반응보다 의료진의 따뜻함, 진심에 더 위로를 받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분탓인지도 모른다. 서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간.
질병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
2. <감염된 독서>는 소설 속의 질병이야기다. 부제는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이다.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한번 훑어보고는 흥미로워서 구입했다. 현직 의사가 썼기에 전문성이 더해졌다. 질병에 대한 정보도 알게 됐고 그것이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을 변화했는지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었다.
저자가 첫 에피소드(‘김선생님께’)에 소개한 ‘의학에 대해 생각하기’가 인상 깊었다. 저자가 전공1년 때 우연히 만난 책(<옥스퍼드 임상 핸드북>)이데, 의사로 첫발을 내딛는 신입에 주는 경구가 담긴 책이다.
*병든 것에 대해 환자를 탓하지 말 것
*환자가 바라는 바를 알게 되면 응할 것
*의뢰 의사가 아니라 환자를 일할 것
*회진은 당신의 사기가 아니라 환자의 사기를 북돋우는데 쓸 것
*질병이나 병동 간호사가 아니라 환자 자체를 치료할 것
*중풍이나 경색이나 병명이 아니라 사람을 볼 것
*희망을 잃은 사람들 곁에서 시간을 보낼 것. 당신은 그들이 울도록 도울 수 있다
*행동하기 전에 양심에 물을 것;
*보통은 병동 간호사가 옳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할 것
*스스로에게 너그러울 것. 너는 끝없이 솟아나는 자원이 아니다.
어제는(2022년 3월 17일),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폭증했다. 하루 사이 확진자가 62만 명, 사망은 429명이다. 이 책을 코로나19가 막 시작되던 2020년 2월 경에 읽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가 곧 끝나려니 생각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의 삶을 점령해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 책을 다시 들춰보니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먼 과거인 듯 까마득하고 생경하게 느껴진다.
질병과 인간의 역사라면 지금처럼 이야기거리가 많은 시대도 드물 지도 모른다. 흑사병, 스페인독감에 이어 코로나19. 코로나 19는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 생활을 바꾸어놓았는가. 아마 이것은 한번의 변화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삶과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촉발제인지 모른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대부분은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새로운 질병, 새로운 환경과 맞서서 싸우고 적응해가면서 삶은 이어져왔고 진행되어 왔으니까.
오늘 다시 10개의 경구를 읽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제발 모두가 다 안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