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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의 무한책임 Mar 21. 2022

[한줄책방] 글은 쓰지만 작가는 아니다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 


음악을 한다는 것과 음악가가 된다는 것     


1. 비올라 다 감바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마랭 마레에게 스승인 생트 꼴롱브가 한 이야기다. 마랭 마레의 연주는 더없이 훌륭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마랭 마레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생트 꼴롱브는 제자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행동으로 때로는 음악으로 보여주었으나 세속의 출세에 눈이 먼 제자에게는 그것이 보일 리, 들릴 리 없었다.      


그럼에도 스승이 이 재주 많은 제자를 거둔 이유는 제자에게 고통과 상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난하고 외로운 환경에서 오로지 음악 하나 붙잡고 살아온 제자에게 간절함과 절박함을 느꼈다. 스승은 제자가 그것을 자신의 음악을 승화시키길 바랐으나 늘 그렇듯 사람들은 내 맘 같지 않다. 제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상처와 고통은 화사한 화장과 분장으로 지워버리려 했다. 스승은 그에게 절교를 선언한다.   

   

음악을 한다는 것과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테크닉과 영혼의 차이 아닐까. 테크닉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테크닉을 완성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영혼이다. 그것은 음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얼마 전 아주 신기한 체험을 했다. 누군가 자신의 글을 대신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떤 기관에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글이었다. 이상하게 글이 술술 써졌다. 내 영혼 없는 글이 그렇게 쉽게 써지는 줄 몰랐다. 반면 내 영혼을 갈아 넣은 글은 쓰기 어렵다. 그런 글은 대면하는 것조차 어렵다. 글은 좀 쓰지만 작가는 아니다. 이렇게도 바꿔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단단하고 부드럽게      


2. <세상의 모든 아침>은 20여 년 전, 영화로 먼저 만났다. 묵직하고 단단한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이 내게 와닿아서 나는 그때부터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됐다. 영화에 원작 소설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가 며칠 전 서점에 가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주저 없이 들고 왔다.     


영화가 한 편의 공연 같은 작품이라면 소설은 한 편의 수채화다. 선화(禪畵)를 보는 기분이다. 문장 한 줄마다, 비올라 다 감바의 선율처럼 단정하게 내리 꽂힌다. 때로는 나뭇잎을 무심히 스치는 바람처럼, 끝없이 흐르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물소리처럼, 이따금 정적을 깨뜨리는 새의 울음소리처럼 흔연하고 자연스럽기도 하다.      

안개 낀 새벽강가에 서 있는 듯 모호하고 신비로운 소설이다. 이 책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작품을 좋아하게 됐다. 그의 문체 스타일을 충분히 잘 살린듯한 번역도 마음에 든다. 한 번쯤 필사하고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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