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우라 마사카즈 <운의 속성>
남의 밥상만 기웃거릴 것인가
1. 누군가에게 기대어 자신의 성공을 바란다는 건 요행수일까. 음광, 후덕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분명 운이 좋은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은 내게 도움이 된다.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누군가의 뒤에 서고 싶을 만큼 운이 좋거나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도 운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작가는 이 문장 다음에 ‘아는 사람, 개인에게 나를 걸어서는 안 된다’라고 썼다. 그 사람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각자에게 정해진 스탠스와 위치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야나는 나답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때로는 종잇장보다 얇고 가벼운 지라 때로는 운 좋고 복 많은 사람이 먹는 밥상에 슬그머니 숟가락 하나 얹고 싶을 때도 있다. 그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다고 원래 주인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나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운의 밥상이 평생 딱 그만큼만 되는 것이다. 남의 밥상만 기웃거릴 것인가, 아니면 작고 소박하더라도 나만의 밥상을 만들 것인가.
운이 나쁜 이유는 그저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
2. 운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고 훌륭한 부모를 만나고, 살아가면서 횡액이라는 횡액은 다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고, 귀인을 만나는 복. 이러한 운은 다 타고 나는 것일까. 유복한 가정환경과 훌륭한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다. 횡액을 피하는 것도 내 선택 밖의 일이다. 사람들은 뜻밖의 재난사고를 선택하는 게 아니니까. 선택하고 예측할 수 있다면, 삶이 이리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횡액이라는 것이 사람의 좋고 나쁨, 선과 악을 구별해서 오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그저 운이 나빠서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운은 정말 운이 나빠서다. 무책임한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운이 나쁜 것은 그냥 운이 나빴던 걸로만 생각하고 지나가길. 큰 의미는 없다.
대신 좋은 운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해보자. 나는 운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알 수 없다. 운에 대한 책도 시중에 너무 많이 나와 있고 나도 여러 권을 읽었다. 그러한 책들은 운에 대해 모든 것을 알려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보면 결론은 같았다. 앞으로의 운에 관한 책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타고나는 운도 있지만 내가 만들 수 있는 운도 있다. 내가 하기에 따라서 운을 끌어 모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운을 끌어 모을 수 있나. 그에 대한 방법도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하다. 감사하며 살아가기, 좋은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하기. 긍정적인 생각하며 살아가기다. 이러한 에너지들이 분명 좋은 운을 끌어온다고 말한다. 뭔가 비상한 솔루션이나 묘책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기운이 빠진다. 시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는 거라서 그렇다.
하지만 운이라는 건 정말 그런 것 같다. 좋은 운은 천천히 보이지 않게 걸어온다. 운은 공기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와 내 주변을 감싸고 있는 미묘한 공기. 내가 이 공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내 주변 분위기도 달라진다.
나는 더 이상 좋은 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 하루, 무사히 보낼 수 있다면 나는 그게 참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