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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의 무한책임 Mar 23. 2022

[한줄책방] 내 삶의 백신을 갖는다는 것

김승미 <무중력의 사랑>


나 잘난 맛에 산다, 남이야 뭐라든       


1. 약 10년 전쯤, 같이 일하던 분이 나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다. “누구도 너를 즐겁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즐거움은 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그분은 즐거움을 찾고, 향유하는데 무척 열심인 듯 보였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지만 남과도 특별히 관계를 많이 맺지도 않았다. 직장 동료들과 의미 없는 술자리나 모임도 갖지 않았고, 남이 뭐라 하든 자신의 일을 야무지게 해놓고 난 다음에는 꼬박꼬박 자신의 시간을 챙겼다. 남의 시선이나 주목은 개의치 않았다.     


더러 주변 사람 몇몇은 그분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분이 딱히 비난받을 마땅한 이유는 없었으나 사람들은 그가 낯설고 싫었고, 무엇보다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혼자 잘난 맛에 산다고. 재미있는 것은 그분도 인생 60세가 다 되어서야 인생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젊은 시절에는 남들 눈치 보느라고 의미 없는 시간을 많이 허비했단다.


남들이 원하는 삶의 기준, 삶의 욕망, 가정의 형태, 라이프 스타일……. 그런 것이 모두 다 의미 없고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은 뒤 자신의 즐거움을 하나씩 찾아갔다. 자신의 욕망에 귀 기울이고 존중했다. 그리고 나한테도 그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 역시 그 당시에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인간미가 없는 것 같아서 그다지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때 어렸고 ‘나’보다는 ‘관계’를 더 중요시 여겼다. 중요시 여겼다기보다는 그런 분위기에서 타생적으로 자라왔다. 이제는 그 말의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내 삶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내 삶의 면역력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공동체 안에서의 유대감, 따뜻한 인사, 위로, 동료가 건넨 손편지에서도 더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유동적이기에 온전히 의지할 것은 아니다. 나만의 삶의 백신을 만들어야 한다. 백신은 평생 영원히 하나뿐인 것도 아니며 나이와 시기에 따라서 또 얼마든지 업그레이드될 수도 있고 추가될 수도 있다. 나는 내 삶의 백신을 하나씩 만들어가고 형성해가고 있다. 그것 역시 즐거움이다.   

 



우리 모두는 이런 시기를 통과했다      


2. 김승미 기자가 젊은 친구들에게 쓴 글모음집. 자신이 20대에 겪은 방황과 고민, 삶에 대한 의문, 시행착오들을 솔직 담백하게 쓴 글이다. 마치 아는 언니가 동생들에게 담담하게 건네는 위로 한 조각. 하지만 꼭 저자보다 생물학적 동생이 아니어도 충분히 위로받고, 함께 가슴 아파할 수 있다. 나는 여기 혼자가 아니다, 라는 따뜻한 각오가 훈김처럼 내 안에 스며든다. 그래, 다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이런 고민을 했었지, 우리 모두 이런 시기가 있었다…….라는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스스로를 ‘여행자 승미’라는 이름으로 칼럼을 연재했던 김승미 기자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의 글 모음인 이 책이 그의 유작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어디에선가 별을 여행하고 있을 것 같다. 지구라는 푸른 별이 아주 살짝 조금 지겨워서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났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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