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의 무한책임 Apr 08. 2022

[한줄책방] 그 많던 '수필'은 다 어디로 갔나

피천득 <수필> 


수필 VS 에세이      


1. 요즘은 수필이라는 말보다 ‘에세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물론 수필과 에세이가 서로 판이하게 다른 장르는 아니다. ‘에세이’의 사전 정의를 보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듣고 본 것, 체험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으로 보면 우리가 아는 ‘수필’과 비슷하다. 그런데 '에세이'에는 한 가지 뜻이 더 있다. ‘어떤 주제에 관한 다소 논리적이고 비평적인 글’이다. 그래서 에세이와 수필은  그 기본 성질에서는 조금 다르다.   

   

미국 대학 입학시험에서는 에세이를 본다. 대학시험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많은 학생들이 어려워한다고 한다.(특히 유학생들) 여기서 ‘에세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필은 아니다. 차라리 논술에 가깝다.

      

그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는 전문 학술서는 아니지만 과학 에세이다. 그 글을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 사피엔스>는 논문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설도 아니다. 인류학 에세이다.  그에 비해 피천득 선생의 <수필>은 에세이라기보다는 수필이며, 법정스님의 <무소유> 역시 수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즉, 수필이 개인적인 생각이나 느낌, 감상 등을 자유로운 형태로 풀어쓴 기술이라면 에세이는 한 주제나 소재에 대해 자신의 감상뿐 아니라 근거나 예시, 논거 등을 체계적으로 들면서 꽤 목적지향적으로 쓴 글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수필은 그 작가의 생각이나 상념, 사유를 보여준다. 피천득 선생 표현대로 ‘마음의 산책’이다. 유유자적. 물론 그 안에서 어떤 대상을 비판할 수도 있고 어떤 사실을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 글의 진정한 목적은 아니다.     


수필과 에세이의 차이를 이렇듯 장황(?)하게 써 본 이유가 있다. 내가 보기에 수필인데 굳이 ‘에세이’라고 소개하는 작가나 책을 많이 보게 된다. 그때마다 살짝 갸우뚱했다. 물론 에세이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약속이나 한 듯 ‘수필’이라는 단어가 쏙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의 유행이고 시대의 흐름일까. 어쨌든 요즘은 에세이 전성기다. 



'피천득'이라는 장르     


2. 피천득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한 때는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였다.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었다. 그 글이 중학교 1학년에게는 얼마나 신선하고 상큼하고 아름다웠던지. 물론 지금 읽어도 아름답다. 다만, 그때와는 조금 다른 감상이다.      


중학교 사춘기 시절에는 그 글이 아름답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시시콜콜(?)하다고 생각했다. '뭐, 이런 게다 좋다는 거지? ' 열세 살이 뭘 알겠나... 그러나 지금 다시 읽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토록 잘 알고 사랑할 줄 알았던 피천득 선생이야말로 요즘 말하는 ‘소확행’의 기쁨을 잘 아는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창 피 끓던 젊은 시절(?)에는 피천득 선생의 이런 글이 현실 안주적이고 기득권적이며 부르주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때는 잠시 멀어지기도 했다.


 선생에 대한 이런 비난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선생은 살아생전, 이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수긍하셨던 것이다. 그 역시 피천득 선생다운 면모이고 그런 태도가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피천득 선생의 글은 치열하지는 않지만 낙낙한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준다. 오월 햇볕 잘 드는 정원에서 한두 줄 책장을 넘기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을 때. 그러다 건듯 불어오는 한줄기 맑은 바람에 낮잠에서 깨어날 때. 그때 느끼는 무위의 기쁨과 평화,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단짝 친구와 함께 구입한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다. 범우사 문고판. 1,500원. 그때는 이렇게 작은 책 한 권을 손에 쥐고도 마냥 행복하고 가슴이 뻐근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줄책방] 누구나 극단주의자가 될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