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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Mar 17. 2023

뤼미에르 형제의 초창기 영화들

그리고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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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밥을 먹지 않고 영화만 보고 산다고 할 정도로 깊이 빠져있던 때도 있었고, 여유 시간이 부족한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영화를 깊고 넓게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보는 것을 즐겨 했지만, 이토록 광적으로 빠져든 것은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몇 년 전 문득 나는 어떤 이유로 영화를 이토록 사랑하게 됐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다. 고등학교 때 <시계태엽 오렌지>로 일종의 문화 충격을 받고 빠져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작품을 모두 감상해보기도 했고, 한참 관심 있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도 많이 보았다. 이렇게 20살을 스쳐 간 무수한 영화 중에 단연 기억에 남는 한 작품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장장 3시간이나 되는 긴 작품이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몇 번이고 다시 보았던 아름다운 영화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양양이라는 소년은 카메라로 사람들의 뒤통수를 찍는데,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내용 자체는 일반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어린 소년의 저 대사 한 마디가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뤼미에르 형제의 초창기 영화들을 감상하고 난데없이 <하나 그리고 둘>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기록으로 남은 그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든 감정이 <하나 그리고 둘>을 보고 느낀 것과 아주 유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는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도 각계각층 다양한 인물의 삶의 방식을 훌륭하게 담아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상을 보면서도 인물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특별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120년 전의 사람들이나 지금의 사람들이나 크게 다를 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과거의 사람들도 카메라를 보면 모자를 벗고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연구 대상이고, 고양이는 쓰다듬고 싶은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오늘날 놀이공원에서 스릴을 느끼며 타는 플룸라이드는 100년도 전에 이미 하나의 놀이기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빙 둘러서 공을 던지는 놀이는 이름은 모르지만, 오늘날의 볼링과 비슷해 보였는데 영상에 자주 나와서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그 외에도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과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눈 앞에 찍을 것이 사람들밖에 없었겠지만, 그 당시 카메라를 집었던 사람들이 첫 영상물을 사람을 대상으로 찍은 특별한 동기가 무엇일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이 고민은 조금 전에 영화가 우리의 삶 자체를 보여준다는 내 생각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뤼미에르 형제는 사람을 기록한 영상물을 사람들 앞에서 상영하였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화면 위에 자신들의 얼굴이 비치는 순간에 놀라움, 희열, 즐거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어디를 가나 화면에서 실제로 보지도 못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주는 오늘날에는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감정일 테다.


내게 영화를 감상할 때의 가장 완벽한 경험이란 처음 영상을 접했던 사람들의 감정을 비슷하게나마 느끼는 것이다. 영화는 현실과는 또 다른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특정한 메시지를 주지만, 결국 본질은 모두 우리 삶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관 밖을 나와서 일상을 살아가다가 문득 영화의 메시지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올 때 영화와 현실은 합일되어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때의 깨달음은 뤼미에르 형제의 영상을 보며 놀라던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과 비견할 수 있지 않을까.


뤼미에르 형제의 초창기 영화부터 <하나 그리고 둘>까지, 카메라로 사람들을 찍으며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준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달리는 말을 찍은 사진에서 움직이는 말을 담을 수 있었던 것처럼 영화는 언제나 발전해왔고, 앞으로도 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우리 삶 가까이에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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