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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Sep 17. 2021

저는 길고양이 카페 운영진이었습니다2

정의감에 불탔으나, 불타버린 시절

지난 이야기에 이어, 길고양이 카페에 가입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던 나는, 어느새 내가 돌보는 고양이들의 글을 포스팅 하면 인기글에 올라갈 정도의 카페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고, 길고양이에 대해 준전문가 수준의 지식들을 보유하고 다른 신입 회원들의 길고양이 관련 질문에 답을 해주는 회원이 되었다.





그러다 어느날, 나는 쪽지 한 통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나의 소설 같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쪽지의 내용은 '새로 길고양이 카페를 만들 예정인데, 운영진이 되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당시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길고양이에 대해 논란이 되는 부분(중성화, 주민과의 마찰 등)에서 건전한 댓글을 다는, 소위 이미지가 좋은 회원들이 대거 넘어간다는 이야기에, 나는 '재밌겠다'는 가벼운 마음에 운영진 제안을 수락했다.


운영진은 총 5명 정도였고, 회의는 카톡 단톡으로 했다. 처음에는 소규모 카페로 시작했지만, 점점 대형 카페들에서 회원들이 넘어와서 카페의 규모가 커졌다. 새로운 카페의 모토는 '길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고, 길고양이를 사랑하며, 모든 회원들에게 공정하자'였다.


이 모토를 위해서 운영진들은 바빴다. 게시판을 모니터링하고, 수상한 업자들(길고양이를 팔아넘기는 사람들)이 발견되면 즉각 강퇴시키고, 어떤 회원이 무료로 사료, 간식 등을 나눔할 때 그 나눔이 회원들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애썼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다들 열심히 모니터링하고 카페를 관리했다.




그러기를 몇 달, 운영진들이 이상한 걸 감지했다. 중학생이라고 하면서, 길고양이들을 돌본다고 하는 여학생이 '학생'이라는 걸 강점으로 수없이 많은 무료나눔을 받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돌보는 고양이 사진을 올린 적도 단 한번도 없고, 무료나눔 받아간 사료의 양이 고양이 몇 십마리를 몇 달간 돌볼 수 있는 양이였다.


운영진들은 촉이 왔다.


그래서 그 회원을 주요 인물로 두고,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사진을 발견했다. 학생이라고 하면서 올린 요리하는 사진에 찍힌 손이 학생의 손이라기에는 주름이 많고 약간의 검버섯이 피어있었다. 그리고 전문적일 정도로 치밀하게 사료를 소분해서 보관하는 사진도 올라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회원은 같은 아이디로 다른 대형 카페들에서도 학생을 내세워 수없이 무료나눔을 받고 있었다. 대체 그 많은 사료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길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진짜 사료와 간식이 필요한 회원들이 무료나눔을 받아야 하는데, 왜 이 회원이 자꾸 가로채기를 해가는 걸까.


운영진은 장기간의 모니터링 끝에, 이 회원이 중학생이 아니고, 무료 나눔을 받은 것들을 수익을 낼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리한 내용을, 어떤 회원인지 밝히지 않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카페에 게시했다. 누군지 밝히지 않겠으니 카페에서 자발적으로 나가달라고 올렸다.




그런데 이 회원이 갑자기 몇 시간 후에 빨간색 글씨로 글을 썼다. 자기는 중학생이 맞으며, 명예훼손으로 카페 운영진을 고소하겠다고. 


중학생이 할 수 없는 대처, 그리고 본인을 특정 짓지 않았음에도 흥분하는 모습에 운영진은 더욱더 확신을 했지만, 카페 회원들은 운영진이 아닌 그 회원의 편을 들었다. 학생 한 명을 운영진들이 계속 지켜보고 나쁜 사람을 만들었다고.


운영진들은 무료나눔이 필요한 회원들에게 사료와 간식이 돌아가길 바라서 정의감을 가지고, 열정을 쏟아서 카페를 관리했는데, 운영진이 사퇴하길 주장하는 회원들의 모습을 보고 운영진은 다같이 허탈했다.


그리고 2018년 5월, 여론이 형성된지 3일째, 그 회원에게 사죄하는 메일을 쓰고, 모든 글에 죄송하다는 댓글을 달기에 지친 나는, 카페를 도망치듯이 탈퇴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내가 이 카페에서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아직도 이야기는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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