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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대한 이야기
내가 만든 암묵적인 룰
공감쟁이가 공감을 멈춰야 할 때
by
혜은
Sep 23. 2021
나는 타고난 공감쟁이다. 단톡에서 누군가 말을 하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하면 내가 민망해서 얼른 내가 대답을 해버리고, 드라마를 보다가도 주인공이 부끄러운 상황에 처하면 나까지 부끄러워져서 급히 TV를 꺼버린다.
그런 내가 하나 공감하지 않는 때가 있다. 바로 '다른 선생님께서 학생을 혼내신 후에 해당 학생이 내게 이를 일러바칠 때'이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학생이 다른 선생님께 혼나면 학생과 같이 속상해져서 뭔가 위로를 건네려고 시도했는데, 원장님께서 어느 날 말씀하셨다.
"예전에 여자 영어 선생님이 있었는데, 내가 학생들을 혼을 내면 꼭 학생들에게 괜찮냐고 원장님이 너무 하셨다고 하더라. 그랬더니 학생들에게 내 말이 안 먹히기 시작해서 힘들었다."
그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공감이, 나만의 배려가 다른 선생님들을 힘들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때부터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요새 학생이 내게 다가와서,
"ㅇㅇ선생님이 저 숙제 안해왔다고 엄청 화내시고, 남아서 숙제하게 하셨어요."라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네가 잘못했네. 화낼 만 하시니까 화내셨고, 남을 만 하니 남으라고 하셨겠지."하고 한 마디 툭 던진다.
이 말 한 마디가 그 선생님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기에, 나는 지금 나의 대처가 무척 마음에 든다.
학생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속상하고 내가 야속하겠지만, 나는 지금의 대처 덕분에 학생이 마음을 바로 잡고 더 성실해지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애정하는 동료 선생님들이 본인의 말에 대한 확신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학생에게 언제나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다. 단호하게 말해야 할 때는 단호해야 함을, 나는 학원에서 일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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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너무 예쁜 영어 학원 원장입니다. 생각 정리를 할 때마다 노트에 글을 써내려 갑니다. 글을 멋있게 쓰진 못해도, 자주, 꾸준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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