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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Feb 27. 2022

나는 왜 자꾸 올라가려고 하는가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동기에 대해서

나는 '커리어'에 꽂혀 있는 사람이다. 주변 친구들은 나에게 참 열심히 산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나는 쉬는 것을 싫어하고, 커리어에 도움이 될 만 한 사소한 일들을 일단 시작하고 본다.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자꾸 올라가려고 하지?'


한참의 고민 끝에, 조금은 그에 대한 답이 갈피가 잡혔다. 내 인생의 의외의 시기가 튀어나왔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내게는 특별한 시기였다.


1학년 1학기부터 3학년 1학기까지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과탑을 두 학기나 했었고, 그에 따른 전액 장학금도 받았다. 시험 기간 2주 전부터는 밥 먹고 화장실 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만 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로 전공 시험이 있는 날 아침에 위경련이 와서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와서 오후에 시험을 치기도 했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에 나는 여행사 인턴을 했다. 인턴이었지만 하나의 구성원의 몫을 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지만, 인턴에게 주어진 일은 한정적이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일이 없어서 멍하니 앉아있어야 했다. 나는 그곳에서 정말 하나의 부품처럼 느껴졌다.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그때 나의 시각으로 회사에 앉아 계시는 다른 분들도 별로 주체성을 가지고 일하는 것 같지 않았다.


공기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리고 있었던 내게, 회사라는 조직에 대한 실망감은 모든 꿈과 희망을 상실하게 했다.


나는, 그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번아웃과 우울증이 겹쳤고, 나는 휴학을 결정했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휴학이었다.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다. 나도 그 상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친구들의 연락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고립되었다.


6개월의 휴학 기간을 보내면서,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면서 우울증이 자연스레 나았다. 나를 성취 중심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 휴식의 중요성을 인생에서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맞게 된 복학. 3학년 2학기에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폭주했다. 이때까지 참고 억눌렀던 삶을, 그래서 늘 갑갑했던 나를, 보상받고 싶었다.


억누르던 것들을 놓아버렸다. 항상 모두에게 착하게 말하고, 공부에만 집중했던 나를, 놓아버렸다. 수업을 마음대로 빠졌다. 날씨가 좋으면 수업을 빠지고 혼자서 본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아무렇게나 쏳아냈다. 약속을 하루에 3개씩 잡고 놀러다녔다. 스스로를 억눌렀던 에너지를 터뜨리는 경험이었다.


당연히, 원래 나를 알던 과 친구들은 나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달라진 나를 피했다. 나는 과에서 어느새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착하게 말하고, 공부에만 집중하던 나를 좋아했던 그들은 어느새 내 친구가 아니게 되었다.


3학년 2학기에 나는 형편 없는 학점을 받았고, 부모님께 심려를 끼쳤지만, 나는 그 시기를 후회하지 않는다. 하나의 과정이고 과도기였다.




대학교 4학년을 나는 다른 과 친구 한 명과 함께 어울리며, 과에서는 여전히 외롭게, 그렇게 보냈다. 전공 수업에서 내게 인사하는 사람이라고는 과 생활을 잘하지 않는 후배들 몇 명이었다.


솔직히 그 1년간, 나는 전공 수업이 참 싫었다. 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알았던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느낌, 그 느낌이 참 싫었다.


졸업 후, 나는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잠깐 대학원을 다녔고, 학원에서 일을 시작했고, 올해 30살이 되었다. 나는 내가 그 시기를 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에, 나는 그 시기가 떠올랐다. 내가 왜 자꾸 올라가려고 하는지 짚어보니, '나는, 보란듯이 잘 되고 싶었다.'


비록 과 친구들과 소식이 끊겨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서로 알 수도 없지만,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그 시기를 거쳐서 스스로에게 더 만족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세상 어디에선가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지금처럼 수강생이 2000명이 넘는 부산의 대형 어학원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그때의 외로움이 기반이 되었다. 이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면 이 깨달음 덕분에,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동기를 깨달은 덕분에,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이 정도 애썼으면 됐다.'


앞으로도 나의 커리어에 계속 마음을 쏟기는 하겠지만, 너무 지나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좀 더 토닥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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