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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Aug 27. 2022

다시 새롭다

모든 게 재밌어졌다

다음주 월요일에 가을학기가 시작한다. 새학기를 앞두고 나는 주말에 카페에 앉아서 수업준비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 재밌다. 여유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서 즐겁다.


새학기가 시작하면 새로운 학생들을 가르치고, 새로운 학생들의 담임 선생님이 되고, 새로운 학부모님들과 소통하며 지내게 되겠지. 약간의 긴장감, 약간의 설렘과 기대감이 복합적이다.


8월 초에 삶의 모든 것들이 무료해져서 집 근처 PT샵에서 PT를 시작했다. 다이어트라는 목표를 세우고 시작한 PT는 오랜만의 근력운동으로 내게 심한 근육통을 안겨다주었고, 학원에서 계단 오르내릴 일이 많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리고 트레이너 선생님의 관리 하에 식단관리를 철저히 했다. 먹어야 하는 식단 외에는 간식거리를 입에도 대지 않고, 마시는 것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물로만 제한했다.




그리고 8월 11일 목요일. PT 시작한지 10일째, 나는 급기야 감기몸살을 앓게 된다. 매일 꾸역꾸역 웨이트와 유산소 운동을 하고, 먹는 양을 최소한으로 줄였는데, 직장인 학원에서 하루종일 서서 수업하는 데 쓰는 에너지도 많다보니, 몸이 버티질 못했던 것 같다.


결근을 했다. 처음으로. 그 날은 도저히 학원에서 수업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아프고 기력이 없었다. 코로나 진단 키트를 몇 번이나 해봤지만 진짜 그냥 감기몸살이었다. 그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무리한 거였다.


다음날인 8월 12일 금요일에는 출근해서 수업 3개를 하면서 시원한 에어컨 아래임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을 엄청 흘리다가 남은 수업 3개를 다른 선생님들께 부탁드리고 조퇴를 했다.


그때 생각했다. 진짜 죽을 만큼 힘들고, 삶이 너무 재미가 없다고. 갑갑해서 숨을 못 쉴만큼 많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고.




쉬면서 에너지가 차오르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재밌을 만큼만 적당히 하면 되잖아! PT도 다이어트에 목표를 두지 말고 내가 뭔가 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일도 해야할 만큼만 성의를 다하면 되지! 일단, 내가 즐겁고 재밌어야 할 것 아냐.'


나는 뭔가를 시작하면 어중간하게 하는 걸 정말 싫어했다. 일단 시작하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했고,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했고, 일과 관련해서 남을 실망시키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하지만, 내가 그에 대한 압박으로 몸까지 아프다면, 그건 내가 무언가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 생각을 가지고 PT와 일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 지 2주 정도 지났을까. 나는 지금 삶이 더이상 괴롭지 않다. 어제는 학기 마지막날이라고 학생들이 그려준 내 그림들에 배를 잡고 웃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지속하는 것의 힘을 믿기로 했다. 나는 어제 여름학기의 마지막날이라서 일이 너무 바빠서 학원에 일찍 출근하느라, 오전 개인운동을 못했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어김없이, 왜 오늘은 운동 인증샷이 없는지 물으셨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 말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다. PT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도 싫고, 열심히 관리해주시는 트레이너 선생님을 실망시키는 것도 싫어서 말이다.


하지만 어제의 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미 일찍 출근하는 걸 선택했었다. 그래서 트레이너 선생님께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하고, 내일은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이기 때문에 꼭 PT샵에 가서 웨이트와 유산소 운동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트레이너 선생님이 꼭 그래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약속을 지켰다. 토요일 오전에 일어나서 운동을 열심히 하고, 주말인 게 무색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카페에서 수업준비를 했다.


그냥, 부담 가지지 않고, 완벽하지 않게, 실수하면 하는대로 계속 하면 된다. 그러면 재밌다. 이걸 왜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조금 목표에 느리게 도달하더라도 가기만 하면 된다. 이런 내 모습까지 이해하고 좋아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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