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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은 Jul 26. 2023

노블레스 오블리주

유퀴즈 <두봉 주교님>편을 보고서


70년간 한국의 낮은 이들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 있다는 걸 유퀴즈를 보고 알았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랜만에 많이 울었다.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오랜만에 지난 날의 내가 가졌던 신념을 다시 만났는 지도 모른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내 핸드폰 속 노트에 오래 전부터 적어놓은 글이다. 고등학교 때 나의 꿈은 '기자'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니면 어쩌면 그 전부터 나는 남보다 더 가지고 있는 사람은 베풀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 당시의 나는 고등학교 문과 전교2등이라는 타이틀 외에는 가진 게 없었지만, 그 덕분에 꿈을 꿀 수 있었다.


기자가 되면, 사회가 비추어주지 않는 힘든 환경 속에 있는 분들을 내가 쓴 기사로써 비추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 분들을 사회가 알아주고 도와주기를 바랬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기자가 되고 싶은 이유는.


고2 때 어쩌면 운 좋게도 친구의 아버님이 신문 기자를 하고 계셔서 메일을 보내서 궁금한 것들을 여쭤봤는데, 그 분께서 내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기사들을 내가 기자가 되면 쓸 수 없다고 하셨다. 때로는 쓰기 싫은 기사도 써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래서 고2때, 나는 꿈을 잃었다. 누군가를 돕지 못한다면 내가 기자가 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고3때, 취업이 잘 된다는 Hospitality 경영학부에 지원했고, 전공과는 별개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다가 학원에 지원했고, 학생들을 돕는 학원 선생님이 되었다.




 석상수 영어학원에서 일할 때, 중고등학생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수업 외에 입시 상담도 참 많이 했었다. 원장님이 시키신 부분은 아니었지만, 고등학생들이 가고 싶어하는 학과가 있는 대학교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입시결과들을 정리해서 프린트 해주곤 했었다. 비록 그 학원을 그 후에 떠났지만, 떠나기 전의 그들은 '내 학생들'이었다.


그 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많이 생각했다. 이유 없이, 내가 도울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누군가를 돕는 선한 마음에 대한 생각이었다. 나중에 내가 내 학원을 경영하면서 경제적 자유를 얻게 된 사람이 된다면, 더 큰 나눔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먹었다.




 그 마음이 다 흐려지기 전에, 지금의 나의 삶의 안주하기 전에, 두봉 주교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다행이다. 낮은 이들을 잊지 않는 내가 되어야지.


아직 내가 노블(귀족)이 되지 못했더라도, 나보다 조금이라도 덜 가진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학원에서 제공하는 월급이나 인센티브, 워라밸에 목숨 걸지 않고, 내 학생들의 실력 향상과 학습 태도 정립에 기꺼이 나를 바칠 수 있는, 편하게 가는 데 치중하지 않는,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지. 다시금 마음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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