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천에는 인어공주가 산다 -1-
1편 J와의 만남
누구의 마음속에나 인어공주가 살고 있을 것이다. 꼭 인어공주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는 요정이 있고 누군가는 어린왕자가 있다.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천사를 보고 누군가는 하나님을 본다. 그들은 우리의 동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준다.
난 요즘도 중랑천에 간다. 퇴근하고도 가고 출근시간보다 눈이 일찍 떠지는 날에도 간다. 주말에 햇살이 따뜻한 날 남편과 손을 잡고 나간다.
그리고 중랑구와 동대문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나오면 가끔 난 멈춰서서 잔잔히 흐르는 물살을 본다. 핸드폰 플래시를 비춰보기도 한다.
어쩌면 레이나, 어쩌면 아리아로 다가올 수 있는 그녀들이 혹시 나타날까봐.
그리고 언제나 보고 싶은 나의 꼬마 J.
1년 전쯤이었다.
당시 난,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서 미치기 일보 직전의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은 오후 반차를 내고 집 앞 중랑천으로 나와 쏟아지는 오후 햇살을 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요놈의 회사를 때려칠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하며. 남들은 유투브다 재테크다 잘도 회사를 안다니고 돈을 불려 나가는데, 난 그런 재주도 없었다. 귀찮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이대로 먼지가 되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노릇이다.
불경기였다. 갑자기 나타난 전염성이 강한 바이러스에 취업시장조차 얼어붙은 때였다. 더욱이 난 취업시장에서 가장 비선호하는 가임기의 기혼 여성이었다. 이직이 될 리가 없었다. 직업이라도 전문직이면 좋았을 것을, 심지어 내 직업은 영업사원이다.
장담컨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애들이라도 영업력에 있어선 9년차인 나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영업사원은 별다른 기술이 개뿔 필요 없다. 걍 거래처한테 굽신거리기만 잘하면 되고 맷집만 세면 된다. 왜 맷집이 세야 하냐면 매일 상사의 쌍욕을 감당해야 하니까!
아, 그리고 단순해야 한다. 예민한 성격이면 일하기 힘들다. 회사에서 받는 그 많은 스트레스를 집에서까지 곱씹는 성격이면 버티기 쉽지 않다.
뭐든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성격이면 좋다. 아침에 상사가 개지랄을 했어도 저녁에 그놈과 웃으면서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정도의 단순함! 9년의 경력동안 내 성격은 딱 9년어치 단순해졌다.
입사 전 눈꼬리가 내려가 순해보였던 내 인상은 일의 고단한 만큼 표독스러워졌다. 눈빛이 독해보인다나. 내 동기들은 내 인상의 변화가 바로 이 업무의 지랄맞음의 척도라고 불렀다.
나와 남편은 결혼 당시 중랑천이 보이는 아파트를 장만하느라 거액의 대출을 받았다.
당시 전세에 부정적이었던 나는 집을 사야 한다고 바락바락 우겨서 집값의 대부분을 대출로 끼고 그 집을 샀다. 문고리만 우리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은행 것이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그렇듯 모아놓은 돈 없이, 양가 지원 없이 집을 마련하느라 우리는 서울에서 가장 싼 지역의 집들을 보러 다녔다. 그렇게 아무 연고 없는 면목동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가 가진 돈은 하찮았고 남편은 죽어도 서울에 살고 싶어했다. 내가 매매를 양보하지 않았듯 남편은 인서울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릴때부터 일산에서 자라난 나와 달리 남편은 신금호에서만 자라왔다. 어딜가든 이동시간이 평균 1시간이었던 나와 달리 남편은 이동시간이 평균 15분인 삶을 살아왔다.
그 와중에 남편은 또 너무 강북이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에 그 돈으로 집을 살 수 있는 "너무 강북이 아닌 곳"은 은평구와 중랑구 뿐이었다.
그 돈에 맞춰 온통 낡아빠진 집들만 보러 다녔다. 신축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진 산길에 위치한 빌라들. 좁은 통로에 위치한 집들. 옆집과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다닥다닥 붙어있는 벽돌색 빌라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쁜 언덕길. 오래된 화장실과 결로 투성이인 발코니. 그 집들은 현재 내가 위치한 사회적 지위가 바로 이렇다라고 속삭여주고 있었다. 원래 신혼은 이렇게 시작하는 거라고들 말하지만.
그런 집들만 보다가 늦은 오후 경 베란다와 거실에 가득 쏟아지는 햇살을 보는 순간, 이 아파트에 반했다. 막힌 것 없이 탁 트인 뷰와 베란다에 온통 넘실거리는 중랑천.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반짝 빛나는 중랑천은 누구나 꿈꾸는 한강뷰를 연상했다.
게으르게 거실에 누워 뒹굴 때 얼굴 가득 쏟아지는 오후 햇빛! 그것은 서향만의 특권이었다.
그렇게 중랑천과 사랑에 빠진 나를 현재 남편의 월급과 내 월급이 힘겹게 감당하고 있었다. 남편 혼자 벌이로는 절대로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회사를 그만두는건 불가능했다.
하늘은 온통 새파랬다. 구름 한점 없는 3월 중순이었다. 분명 지금은 봄인데 가을색을 지닌 갈대가 키보다 더 높이 자라있었다.
돌의자에 앉아 저 멀리서 머리를 흩날리며 달려오는 한 여자의 출렁이는 가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진다. 한쪽에선 꽤 어려보이는 학생이 정신없이 춤연습을 하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흘깃흘깃 쳐다보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몸선을 꼬며 춘다.
노부부가 팔을 귀엽게 내저으며 중랑천 길을 빠르게 걷고 있다. 난 이렇게 평화롭게 흘러가는 풍경이 참 좋다.
온 몸의 색이 까만 비둘기가 흰색이 얼룩덜룩한 비둘기를 정신없이 쪼아대고 있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따돌림이 존재한다. 상대방이 자신과 다른 모습이면 거리낌없이 불쾌함을 드러낸다. 사람도 똑같지. 자신과 조금만 다르다 싶으면 물어뜯지 못해 안달인 사람들.
회사를 떠올리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햇살에 반짝거리는 중랑천을 보며 좀 걸었다. 걸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온다고 어디선가 보았다. 긍정에너지가 부디 많이 발사되길 빌며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금 때려치면 안돼. 빚더미에 올라앉게 될거야.
신용불량자가 된 끔찍한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중랑구와 동대문구를 잇는 징검다리에 앉아 물살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물살은 돌다리에 걸릴 때마다 깨지며 반짝반짝 빛났다.
그 때였다.
"아줌마, 뭐 봐요?"
그것이 나와 J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을 수도 있고.
돌아보니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보이는 아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커트한 곱슬머리에 파란 패딩조끼를 입고 있었다. 정말 존재만으로 성가신 저 나이 또래. 게다가 이 시국에 마스크도 안끼고 있어!
"인어공주를 보고 있어."
한마디로 개소리였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날 미친여자로 취급해주고 가길 바랐다. 너랑은 더이상 말 섞고 싶지 않아 란 신호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의 습성을 모르는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인어공주요? 그런게 어디있어요? 잉어를 그렇게 부르시는 거예요? 등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J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아, 그 초록색 머리카락의 인어 말하는거죠? 공주는 아니라고 하던데"
어찌나 기대밖의 대답이던지. 난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중랑천에 빠질 뻔했다.
"뭐?"
"레이나 말하는 거 아니예요? 이 시간쯤에 나타나는 건 레이나 뿐이잖아요."
공상장애라는 병이 있는지 혼란스러워 지고 있는데 J는 정점을 찍었다.
"아줌마 지금 전혀 행복하지 않은가 보네요? 중랑천의 인어는 불행한 사람 눈에만 나타나잖아요."
나는 항상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가정적이고 완벽한 남편을 가졌고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외국계 회사를 다닌다.
비록 대출은 많지만 벌이도 많다. 언제나 꿀이 넘쳐 흐르는 부부. 나와 남편은 연애때부터 한번도 싸우지 않고 지냈다. 게다가 고양이 두마리까지.
누군가 공원에 허접한 인형과 함께 박스에 담아 새끼 고양이 두마리를 유기했다. 한 대학생이 발견하고 서둘러 구조했고, 내 품으로 오게 되었다. 날 어미라고 생각하고 틈만 나면 꾹꾹이를 해대는 따뜻하고 귀여운 존재들.
잠에서 갓 깨어난 고양이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면 너무 사랑스러워서 참지 못하고 안아올려 뽀뽀세례를 하는데, 그때의 고양이는 묘하게 힘도 없고 아주 말랑말랑하고 따스하다. 그럴때 느껴지는 행복이란.
이 와중에 대체 불행이란 단어는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나와는 어울리지 않은 단어다.
난 어처구니 없는 눈빛으로 J를 쏘아보았다. J는 패딩조끼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뭐?,하는 표정을 지었다.
"레이나의 노랫소리는 불행을 녹여줘요."
난 정말로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다음에도 레이나가 보이시면 그 노래를 따라 부르세요."
"뭐?"
J는 미간에 인상을 쓰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라구요. 불행이 모두 녹아버리게."
"넌 누구니? 엄마는 어디 계시니."
고작 할 수 있는게 꼬맹이의 보호자를 찾는 것이라니. J는 손가락으로 저 멀리에 서 있는 단발머리 여자를 가리켰다.
그녀는 하얀 비숑을 산책시키고 있었다. 저 여자가 지금 자식을 이상하게 키워놨어.
어른을 놀리는 건지 공상이 심한건지 모르겠는데 부모에게 뭐라고 말 한마디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J는 악의 없이 내게 말을 걸었고, 인어공주 얘기는 내가 먼저 꺼냈다. 생각해 보니 딱히 내가 화낼 입장이 아니었다!
난 그냥 그 자리를 뜨기로 했다. 징검다리를 건너기 위해 J를 슬쩍 밀치며 말했다.
"너도 불행하니? 레이나를 아는걸 보면."
"옛날에요. 요즘엔 안 보여요."
또랑또랑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J의 눈동자는 햇빛에 비쳐 갈색이 많이 돌고 있었다.
"내 불행은 이미 다 녹아 없어져 버렸어요."
난 더이상 대꾸할 말도 기력도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 등에 대고 J는 크게 외쳤다.
"얼른 녹여 버리는게 좋을 거예요! 오래 되면 불행이 안 녹아내려요! 금방 굳거든요!"
J의 엄마라는 여자는 이쪽에 관심도 없이 비숑만 정신없이 돌보고 있었다.
어쩐지 화가 치밀어서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갔다.
저기요! 라는 내 단호한 호칭에 여자는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어딘가 모르게 텅 빈 눈동자.
패기 넘치게 다가갔던 난 공허한 그림자와도 같은 눈에 기를 눌려 슬그머니 말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그 쪽 아이가 제게 이상한 말을 하잖아요..."
여자는 내가 뺨이라도 한 대 친듯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두 번 깜빡이고, 침을 한 번 삼키고, 비숑의 목줄을 놓친 채 여자는 가만히 말했다.
"제 아이가요...."
마치 한숨과도 같은 대답이었다. 물음도 대답도 아닌 어조. 비숑은 낑낑 울며 여자에게 두발로 매달렸다. 난 공허한 그녀의 눈동자에 할 말을 잃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한참동안 내 쪽을 보며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 1편 J와의 만남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