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2-
누구도 그를 쳐다보지 않아서
할머니는 자는 듯 돌아가셨다고 했다. 부검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나이가 말해주듯 충분히 장수했다. 아무도 그녀의 죽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단 한명, 우리 아빠만이 홀로 그녀의 죽음을 의심했다. 아빠는 할머니의 총기를 믿었다. 그녀가 백살쯤은 당연히 넘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눈 한번 찡그리지 않고 암산을 한다. 그녀는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한 눈꺼풀 아래 놀랍도록 반짝반짝 빛나는 두 눈을 가졌다. 눈빛만 보면 할머니가 우리 중 가장 총기가 있다.
그녀는 아빠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날 그러니까 장례식 일주일 전, 다음에 올 땐 막걸리를 사오라고 했다. 그녀는 막걸리를 참 좋아하고 즐겨마셨다.
막걸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그렇게 갑자기 죽는다고? 막걸리인데?
아빠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억지 논리를 펼치며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큰아버지로부터 장례식장에서 쫓겨났다.
큰아버지는 이런 못 배워먹은 놈, 돌아가신 어머님을 한번 더 죽일 셈이냐고 화를 내셨다. 모두가 큰아버지에게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94세 먹은 노인네가 자다가 죽었는데 부검을 하는 미친 집안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큰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었다.
그는 당황하거나 흥분하면 점점 더 길고 빠르게 더듬었다. 친구들은 그 반응이 재미있어서 그를 항상 놀렸다. 안타깝게도 그럴수록 상황은 더 안좋아졌다. 빠르게 말을 더듬다가 그는 온통 얼굴이 새빨개진 채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그는 더듬지 않고서는 단 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큰아버지는 맏이가 받는 혜택을 누렸다. 그는 학교에 다녔다. 아빠나 셋째 작은아버지가 그토록 다니고 싶어하던 학교를 큰아버지는 맏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진학했다. 할머니는 옷감에 바느질을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방안에 앉아 전기세를 아낄 셈으로 촛불 하나 켜놓고 옷을 만들었다. 그것은 큰아버지를 배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큰아버지는 못 배워먹은 놈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것은 자신의 학업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했다.
큰아버지는 취업을 하지 못했다.
은행이나 관공서 등 여러 좋은 취업자리가 있었다. 큰아버지는 학교에서도 공부를 곧잘 했다. 그는 머리가 좋았다. 문제는 면접 때 말을 굉장히 심하게 더듬는다는 것이다. 그는 한번도 면접을 통과하지 못했다. 꿈에서는 면접관들의 깊은 한숨소리와 무시 섞인 눈빛이 맴돌았다. 면접이 거듭되자 자신감 또한 사라졌고, 면접을 앞두면 심장이 터질 듯 쿵쿵, 뛰며 머리가 견딜 수 없이 아파오곤 했다. 때론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워졌고, 면접실의 벽이 차츰 그에게로 다가오는 듯한 환상까지 일었다.
내가, 내 동생들은 다니지도 못하는 학교를 졸업한 사람인데. 큰아버지는 서럽고 원통했다.
졸업 후 몇 년 동안 어디에도 취업하지 못하자 큰아버지는 어느 날 손수 이발기를 잡았다. 징, 스스로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깎았다.
마당귀에 큰아버지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그는 그 길로 잠적했다.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맏이는 모든 재산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기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온 동네를 찾아다녔으나 큰아버지가 어디에도 없자 그 후엔 전국으로 그를 쫓았다. 노숙을 하고 밥을 빌어먹으며 오로지 큰아버지만 찾았다. 그러는 사이 고모가 나이 어린 동생들을 도맡았다. 아버지는 학교를 나가는 대신 노가다판에서 돈을 벌었다.
할아버지는 둘째부인에게 눈이 멀어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2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