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3-
그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다
아빠가 스님 복장을 하고 있는 큰아버지를 절에서 발견하고 잡아 왔을 때, 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큰아버지를 꼭 안았다. 그녀는 소리없이 입술을 깨물고 흐느꼈다.
당시 아빠는 바로 그 순간이 큰아버지를 처음으로 죽여버리고 싶었던 순간이라고 회상한다.
아빠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고 때때로 큰아버지를 찾느라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따라서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했지만 몇년 후,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라로 구했다. 이제 아빠도 남들이 보기엔 고등학교를 졸업한 졸업생이 되었다.
겨우 집안이 안정되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잡으러 나섰다. 그는 막내아들 또래의 아들을 또 낳은 채 할머니를 보고도 본체만체 했다. 할머니는 그 집 부엌에 걸려있는 가마솥을 떼어다가 돌로 내리찍어 마을 하천에 내다버렸다. 당장 먹을 밥이 없자 할아버지는 급히 읍내에 가서 가마솥을 사왔고, 할머니는 다음날 또다시 떼어다 버렸다.
둘째부인은 시골사람 답지 않게 피부가 희고 단정했다. 그 단아하고 품위 있는 생김새에 할머니는 더욱 화가 났다. 할머니는 일평생 꾸며본 적이 없었다. 가마솥을 다섯 개쯤 떼어 던진 후 할아버지는 드디어 할머니를 때렸다. 할아버지의 구둣발에 짓밟히면서도 할머니는 그 다음 날 또 가마솥을 떼었다. 지독한 사람이었다.
할아버지와 둘째부인 사이에서 나온 아들을 아빠와 형제들은 집요하게 괴롭혔다. 온 동네에 엄마가 몸 팔아서 나온 새끼라고 소문을 냈다. 동네 사람들은 어떤 아이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뜻밖의 따돌림에 재미있어 했다. 죄는 할아버지에게 있었지만 그 누구도 할아버지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것을 보면 형제들은 항상 책가방을 빼앗고 푸세식 화장실에 던졌다. 하도 반복되어 나중에는 그 아이의 온 몸에 똥독이 올랐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다니던 아빠의 형제들에겐 차례로 책가방이 생겼다. 아빠는 더 이상 책가방이 필요 없었지만 잘 때도 가방을 끌어안고 잤다. 그는 평생 배움에 대한 아쉬움이 길게 남았다.
그날은 그 아이가 새옷을 입고 등교를 했다. 형제들은 구경도 못해보는 새 옷이었다. 그 아이를 둘러싸고 옷을 벗겼다. 책가방을 또 빼앗으려 하자 그 아이는 처음으로 반항을 했다. 그 아이는 누가 봐도 불리한 형국이었으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손에 돌을 쥐고 빙빙 휘둘렀다. 하지만 형제들은 겁내지 않았고 넷째는 그 아이의 가슴팍을 차 손쉽게 넘어뜨렸다.
그때 누군가 넷째의 귀를 세게 잡아당겼다. 둘째부인이었다. 그녀는 단정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잔뜩 치켜올라간 눈썹으로 넷째의 뺨을 세게 때렸다. 다들 당혹스러웠고 분위기에 압도당해 꼼짝하지 못했다. 그녀는 넷째의 다른쪽 뺨도 내리쳤고 그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같이 등교를 했다. 그 아이의 등에 매달린 책가방 고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그날 오후 넷째의 퉁퉁 부은 뺨을 발견한 할머니는 기염을 토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는 바닥에 나뒹구는 병을 잡은 채 한 걸음에 그 집으로 달려갔다. 단정한 둘째부인은 앞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녀가 할머니를 발견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그녀의 머리를 병으로 내리찍었다. 병이 깨지며 그녀가 쓰러지자 할머니는 그녀의 얼굴을 깨진 병으로 죽 그어버렸다. 그녀의 머리통과 얼굴에서 피가 줄줄 났다. 숨에서 지켜보던 형제들은 깜짝 놀라 뿔뿔히 도망을 갔다.
그 날 이후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잠적을 했다. 누구도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할아버지는 전국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수소문했고 진심으로 울었다. 그가 그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밤마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술에 취한 채 아무데서나 잤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1년을 방황했다.
아빠와 고모는 가족의 뒷바라지를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하지만 누구도 고마워하지 않았다.
-3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