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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Nov 26. 2020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4-

용호상박

그녀는 병원의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다.

고모와 큰아버지는 얼굴을 보자마자 서로 껴안고 통곡을 했다. 둘이 저리 애틋한 사이가 아닐텐데,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죽음 앞에서는 서로에 대한 오랜 감정도 잠시 잊게 되는 편인가보다.


큰아버지가 결혼상대가 있다고 했을 때 가장 어이없어한 사람은 고모였다. 사실상 맏이인 고모를 제치고, 가장 맏이 취급을 받으며 집안의 혜택을 독차지한 사람. 하지만 동생들 뒷바라지는 뒷전이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큰아버지였다.

결혼까지 해버리면 진심으로 가족 일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모는 그가 누구를 데려오든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겠다며 이를 갈았다.

할머니는 너무나 좋아하며 당장 집에 초대하라 했다. 그가 누굴 데려오든 찬성할 판이었다.


 큰어머니가 처음 집을 방문했을 때, 고모는 대놓고 그녀를 무시했다. 녀와 그녀의 집안을 무시하고 깎아내렸다. 큰어머니는 고모의 태도가 달갑지 않았다. 결혼을 다시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하는 찰나 그만 계획에도 없던 아이가 들어섰다. 고모는 혀를 끌끌 찼다.

결혼식은 따로 올리지 않았다. 임신중이라 식을 올리기가 애매했다. 은근슬쩍 고모 식구들을 위해 희생했던 온갖 집안일을 그녀에게 슬금슬금 시켰다. 시집살이는 사실상 할머니보다 고모가 다 시켰다.


큰어머니는 임신한 상태로 온 가족이 먹을 김장을 해야 했으며 운 겨울날 우물까지 가서 식구들이 먹을 물을 길어와야 했다. 구보다 먼저 일어나 집안일을 준비하고 누구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국 쪼그리고 앉아서 방바닥을 걸레로 닦던 도중 심한 하혈을 했고 절박유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집안일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어야 한다고 했으나 고모는 남들 다 하는 임신으로 온갖 유세를 떤다고 핀잔을 주었다.  눈치에 도저히 누워만 있을수가 없었다.


결국 고모의 구박에 큰어머니는 꾸역꾸역 집안일을 시작했고 첫 아이를 계류유산으로 보냈다. 큰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럽게 소리죽여 우는 큰어머니에게 고모는 약해 빠진 아여서 버티지 못한 걸로 마음 아파 한다고 뭐라 했다.  일은 큰어머니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가 되었다.


그 후로는 큰어머니도 참지 않았다. 어떻게 고모를 엿을 먹일까 깊게 고민한 후 큰어머니는 고모를 눈앞에서 제거하기로 했다. 은근히 할머니 앞서 고모의 결혼을 조장하였다. 할머니는 큰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고모가 아직까지 시집을 가지 않은 것을 못마땅해하던 참이었다. 큰어머니의 이간질은 할머니의 커다란 잔소리로 돌아왔고 말끝마다 시집, 시집하며 스트레스를 주었다. 결국 고모는 런저런 사건 후 직업도 없는 동네 놈팽이와 결혼을 했다. 또다른 불행의 시작이었다.


정작 고모가 시집을 가자 엉뚱하게 큰어머니가 할 일은 더 늘어났다. 그나마 그 전에는 고모와 집안일을 분담해서 하였으나 지금은 식구 중 아무도 큰어머니의 일을 도와주지 않았다.

큰어머니는 그 후 다시 임신하여 무사히 아이를 낳았으나 출산 후에도 제대로 몸조리를 하지 못하고 온 식구들의 손빨래를 하는 바람에 관절 마디마디마다 바람이 들어가 시큰거렸다. 큰어머니의 고왔던 손은 금세 거목처럼 거칠어졌다. 녀는 밤마다 울었다.


그녀는 온갖 고생을 했 어떤 식구도 그 일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았다. 집안을 위한 여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큰아버지는 이 모든 일을 방임했다.


눈보라가 세차게 휘날리던 날, 그녀는 아기를 둔 채 맨 몸으로 집을 나갔다.

그 후로 큰어머니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4편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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