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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a Mar 22. 2021

김말순 여사의 장례식 -6-

뿌린 대로 거둔다면

고모에 대한 제일 첫 기억은 내가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요강 위에 앉아 있을 때였다.

예쁜 아가씨, 이렇게 치마를 펼쳐야 다른 사람들이 못 보지 라며 고모는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내가 말아 쥐고 있던 한복 치마를 받아 요강 주위로 펼쳐서 내 엉덩이를 가려주었다.

그때만 해도 고모는 그다지 미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곱고 예쁜 집안 어른이었다.


그녀는 날 특히 예뻐했다. 사촌들 중 가장 할아버지를 닮은 나는 고모와도 그럭저럭 닮아 보였다. 

고모와 길을 나서면 곧잘 딸이냐고 질문하기도 했다. 가끔 그녀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도도한 표정을 지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반응하는 당연한 신체 반응이었고 완벽한 어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기도 했다.

 하루는 고모가 금으로 된 무당벌레 브로치를 내 한복 위에 달아주었다. 어찌나 그 브로치가 빛을 받아 반짝거리던지 어린 내 마음에도 퍽 흡족스러웠다. 명절이 지나기가 무섭게 엄마가 분실의 위험을 핑계로 브로치를 빼앗아갔지만.


매년 명절을 거듭할 때마다 모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져 갔다. 아이라인을 판다처럼 눈에 칠하고 오거나 유난히 큰 소리로 대화하거나 다 같이 예배를 드릴 때 찬송가를 혼자서 멱따는 목소리로 부르는 일련의 행동들이 더 이상 그녀를 교양 있는 어른으로 비춰주지 않았다. 게 밥 먹는 예절을 가르쳐주던 고모는 어느 순간부터 밥상머리에서 혀를 내밀어 반찬을 집어먹고 입을 벌리고 음식물을 쩝쩝 소리 내어 씹었다.


고모가 내게 친한 척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져서 그녀를 슬슬 피하곤 했다. 그녀는 때때로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소리들을 늘어놨다. 아이스크림이 녹는 소리가 들린다,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린다 등의 헛소리를 늘어놓는 그녀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나마도 명절 때마다 얼굴을 잠시 보는 게 전부인 관계라서 그녀의 심각성을 체감할 순 없었지만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빠와 고모는 사이가 좋았다. 둘이서 집안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저들의 청춘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희생했다는 묘한 동질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둘이서는 마음이 잘 통했다. 아빠는 그런 고모를 때론 안쓰러워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했다. 때맞춰 그녀를 정신과에 데려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어느새 남편이 두 명이고 자식이 다섯 명이 되어 있었다.


두 번째 남편은 나도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말수가 특히 적고 얼굴이 붉은 편인 아저씨였는데 아주 얌전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아저씨가 술만 마시면 그렇게 고모를 뭐 패듯 팬다는 사실은 이혼한 후에야 밝혀졌고, 아저씨에게 매형, 매형 하며 친한 척을 했던 아빠는 참으로 가슴 아파했으나 정작 할머니는 이 모든 일에 시큰둥했다.


정호를 어미 없는 자식으로 자라게 한 년이라 죗값을 받는다는 알 수 없는 말을 이따금 중얼대실 뿐이었다. 정호는 큰아버지의 자식이었다. 명절 때 식구들이 다 같이 모이면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싸했다. 아버지와 고모는 상종을 하지 않고, 아빠와 고모는 친하고, 할머니와 고모는 또 싸하고, 온 가족이 할아버지와 싸하고 그런 야리꾸리한 관계 말이다. 

 내 머리가 커가면서 콩가루 집안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겉에서 보면 어느 정도는 멀쩡해 보이긴 하니까. 어느 집안이나 문제없는 집안은 없고 한없이 화목하기만 한 집안도 없듯이. 머리가 커져감에 따라 그런 고모의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 지금 저렇게 온 가족이 조문객을 맞느라 분주한데 혼자 빈소에 딸린 방에 퍼질러 누워서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고모의 모습을 봐도 말이다. 고모의 그 많은 자식들과 남편들 중 아무도 오지 않았다. 무려 고모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자리인데도.

방에서 양말을 꺼내려 들어간 내게 고모는 살갑게 말을 걸었다. 내 남자 친구 사진 볼래? 그녀의 나이가 일흔인데 남자 친구가 있다니. 보여달라고 하자 그녀는 핸드폰을 톡톡 두드려가며 사진첩을 열었다. 딱 동네 아줌마들이 좋아할 만한 촌스러운 꽃을 배경으로 선글라스를 낀 늙수그레한 할저씨가 씩 웃고 있었다. 냄새나게 생겼네,라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말할 수 없어서 댄디하게 생기셨어요,라고 웃었다.


-댄디? 그게 뭔데?

-세련되게 생기셨다고요.


고모는 내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흐흐 웃으며 내게 물었다.


-우리 강아지는 남자 친구 있나? 고모 닮아서 이렇게 예쁜데 당연히 있겠지?


난 최대한 예의 바르게 웃으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뒷걸음질로 방을 나왔다. 방을 나왔는데도 못들을 소리를 들은 것처럼 심장이 온통 쿵쿵 뛰었다. 곧장 아빠에게 걸어간 나는 빠른 속도로 일러바쳤다.


- 아빠, 고모는 나이 먹고서도 얼굴값을 한다, 응? 글쎄 남친이 있대.


아빠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뭐 남친? 네 고모 나이가 일흔인데 남친? 그새끼 앞은 보인 대냐? 걸을 수는 있고?


아빠의 대답에 낄낄 웃다가 셋째 작은 아와 눈을 딱 마주친 나는 슬쩍 입꼬리를 내렸다. 장례식장에서 웃다니, 나도 참 미친년이다. 셋째 작은 아버지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씩 지으며 우리 앞으로 왔다.


- 누나가 남친이 있대?


잊고 있었다. 셋째가 형제들 중 가장 능청스럽고 허울 없이 웃긴 사람이란 것을. 난 애써 내렸던 입꼬리를 다시 살짝 말아 올렸다.


-6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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