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것을 본다〉-11화-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날린 적이 있다. 꽤나 공감할 수 있는 멘트였다. “많은 기업이 회사문화와 DNA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략을 세운다. 이는 운동선수가 자기 신체조건과 관계없이 전공 종목을 고르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모를 존재는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골프장에 가면 제일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나 오늘 왜 이러지?”라는 말이다. 공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거나 어처구니없는 플레이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멘트다. 물론 그날따라 실수가 많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평소에도 골프를 잘 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냥 자신의 실력에 환상을 갖고 있을 뿐.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한 초보인데 골프채는 타이거 우즈가 쓰는 가장 좋은 걸로 사서 떡하니 들고 오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스윙에 맞는 골프채가 있는 것처럼, 자신의 본질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한 번은 팀원이 홈페이지 개편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무심코 사인하려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금액이 예상보다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높은 단가를 책정한 것이 실수가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미스다. 물론 홈페이지는 필요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분석해보자. 과연 맥주회사 홈페이지를 찾는 고객들이 얼마나 될까.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맥주회사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들 중 1/3은 기자이고, 1/3은 경쟁사 마케터요, 1/3은 실속만 차리는 체리피커들이다. 과연 홈페이지 개편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는 게 올바른 선택일까? 그럼에도 홈페이지 개편안은 마케팅 전략으로 빠지지 않는, 때만 되면 기본 옵션처럼 따라붙는 안건이다. 두 번 생각하지 않은, 안이함의 극치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 뉴미디어가 온라인을 점령하면서, 온라인 세상은 기업에게 또 다른 시험대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 무한한 잠재고객들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순순히 우리의 구애를 받아들여 구매버튼을 클릭할까? 단지 제품을 선전하는 데 끝나는 건 아닐까? 제품 프로모션에 참여하는 데 그치는 건 아닐까? 실제 많은 기업들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라. 제품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일회성 캠페인들의 일색이다.
트위터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광고카피 같은 홍보성 멘트들이 올라온다. 담당자가 들고온 마케팅 기획서에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알려서 얼마나 팔겠다는 내용이 빠진 채,‘O월O일까지 팔로워 O만 명 확보’ 같은 막연한 목표만 쓰여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 하나. 적지 않은 리더들이 ‘ SNS 포비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SNS에 익숙하지 않기에 겁부터 내는 것이다. 잘 몰라서 반대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까봐 SNS와 관련된 기획이라면 무조건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일종의 디지털 허세다. 그들은 리트윗 O만 건이라는 수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따져보지도 않고 이러한 답변을 날린다.
“남들 다 하는데 우리도 기본은 해야 하지 않겠어?”
물론 뉴미디어 마케팅이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해서 탁월한 효과를 본 기업도 적지 않다. 다만 무조건 남들이 하니까라는 식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이벤트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자동차용품 전문기업 불스원은 온라인상에서 일회성 프로모션이 아닌 일관성 있는 마케팅을 전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2년부터 시작된‘ 아이 러브 마이 카I Love My Car’의 캠페인에는‘ 내 차를 소개합니다’, ‘ 내 차랑 놀자!’ 등의 이벤트가 포함되어 있다. 당첨된 가족을 오프라인의 가족세차 놀이터로 초청해 셀프세차 등 자동차와 관련된 각종 체험형 프로그램에 참가시킨다. 잠재고객들에게 참여하는 재미를 선사한다는 점, 기업의 본업과 어울리는 이벤트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댓글 하나 달고 추첨으로 자동차용품 하나 선물받는 것보다 훨씬 기억에 남을 일 아닌가. 충성 고객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이처럼 온라인 기획이 오프라인 행사로까지 연결되어 고객들의 열렬한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뉴미디어 마케팅이라 생각된다
일본 최고 소설가 중 한 명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음과 같이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작품을 쓸 때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싫어했던 나 자신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런 내가 중간에 내던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그가 책을 쓰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독자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자기 자신이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을 어찌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겠는가.
나는‘ 카스라이트’ 광고를 찍으면서 싸이를 만나게 됐다. 우리는 운이 매우 좋았다. 그가‘ 강남스타일’로 엄청나게 뜨기 전에 계약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똘아이’임을 언제나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다닌다. 그의 똘아이 전략은 매우 솔직해 보이지만 치밀하다. 예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시대에서 뱃살을 감추지 않았고, 멋있기보다 재밌어 보이기를 택했다. 그가 자기만의‘B급 코드’를 대놓고 어필할 수 있었던 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태도가 쇼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내 자신이 즐기지 못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즐겁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도 후배들에게 마음껏 일탈해보라고 권한다. 물론 뭐든지 허용하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선배가 알아서 걸러줄 테니 일단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 색깔을 보여주라는 얘기다. 나는 어울리지 않는 최신 스타일의 옷을 애써 입으려는 사람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신나서 춤추는 이들이 진정한 인사이터라 믿는다. “절대 다른 것을 찾지 마라. 세상에 새로운 건 없다. 단지 내 것을 하면 된다.”고 외치는 제이오에이치 조수용 대표의 주장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소비자들을 사로잡은 승자들의 면모도 크게 다르지 않다. 스타벅스라는 제국은 커피 애호가인 하워드 슐츠에 의해 탄생했고, 페이스북이나 구글을 창업한 것은 컴퓨터에 열광하던 세대였다. 이들은 자기만의‘ 쇼show’로 대중들을 끌어들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40대 중반의 김 부장이 유행에 뒤처지지 않겠다며 노래방에서 랩을 하고 춤을 춘다면 멋져 보일까? 어쩌면 지켜보는 후배들의 손발만 오그라들지도. 차라리 평소 자주 듣던 발라드를 끝까지 부르는 것이 몇 배는 더 멋있어 보일 것이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 흥행에 성공한 쇼가 된다.
워런 버핏은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훌륭한 타자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을 치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타격 자세를 잡은 뒤 자신이 좋아하는 공이 나오면 방망이를 휘두른다.”
야구에서 삼진의 대부분은 자기가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라,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공에 현혹되어 방망이가 나가는 경우다. 실력 있는 타자들은 원하던 공이 나오지 않으면 파울로 걷어내고, 오로지 자기가 원하는 공을 때려서 안타나 홈런을 만들어낸다. 이는 마케팅 전략에서도,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종종 어림짐작으로 이것이 트렌드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하니까라면서, 잘 몰라도 재미가 없어도 따라 하려고 한다. 이러한 습관이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다.
유니클로는 다른 옷들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만약 유니클로가 명품처럼 브랜드 로고를 크게 박았다면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유니클로가 자기 브랜드에 자신이 없어서 로고를 달지 않은 것이 아니다. SPA 브랜드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고품질의 옷을 착한 가격으로 구매하는 합리적인 성향의 소비자다. 다양하고 빠른 상품 전환으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연출하는 이들이다. 굳이 로고를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로고리스’ 백이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최근 명품 로고로 도배된 가방보다 로고를 없애고 어떤 브랜드인지 궁금증을 갖게 하는 로고리스 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로고만 봐도 어느 브랜드인지 아는 식상한 명품백보다 가격도 착하고 개성도 드러낼 수 있는 가방을 선호하는 셈이다. 피터 드러커는“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봐야 평균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신의 강점을 발견해 이를 특화시켜 나가는 편이 21세기를 살아가는 방편이다.”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제대로 깨닫는 순간, 강점은 강화된다. 자연히 약점은 흐릿해진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한 편의 쇼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또 하다 보면
그 자신이 스토리가 된다.
그러면 그가 죽고 난 뒤에도
스토리는 살아남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도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 영화 〈빅 피쉬〉 중에서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