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것을 본다〉-10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러닝 타임이 3시간이나 되는 상당히 긴 영화였는데, 유독 한 장면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주인공(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갑자기 펜을 꺼내더니 친구들에게 이 펜을 자기에게 팔아보라고 제안하는 모습이었다. 대부분 갑작스러운 제안에 살짝 당황하며 펜의 기능만 장황하게 늘어놓다가 주인공에게 제지당하고 말았는데, 한 바람둥이 친구만이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주인공에게 물었다.
“옆에 있는 냅킨에 이름 좀 써줄래?
주인공은 주머니를 뒤지면서 되물었다.
“펜이 없는데?”
그러자 그 바람둥이 친구는 씩 웃으며 펜을 들어 보였다. 펜의 기능은 언급하지도 않고 왜 펜이 필요한지를 상대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셈이다. 그는 친구를 펜이 필요한 상황에 끌어들였다. 우리는 종종 제품이나 서비스를 설명하려 든다. 매우 길고 자세하게. 뭔가 켕기는 게 있으면 변명이 길어지는 것처럼,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자신이 없으면 설명만 장황해진다. 이야기의 핵심이 빠져 있는 한, 대화는 주변만 겉돌다 끝날 수밖에 없다.
피자헛에 근무하던 당시,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온라인 주문 시스템을 개발했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피자를 주문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당시엔 시스템 구축도 힘들었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도 어려웠다. 낯부끄러운 자랑 같지만, 이 시스템은 글로벌 본사에까지 소개되어 2010년 전 세계 피자헛 온라인 매출 1조 원을 달성하는 근간이 되었다. 나도 이로 인해 피자헛의 모기업인 얌 브랜드YUM Brands로 발탁되어 피자헛 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및 뉴 미디어 마케팅 총괄을 맡게 되었다. 이 시스템과 마케팅 노하우를 전 세계 피자헛에 보급하고자 약 3년 동안 1년의 절반을 비행기와 낯선 땅에서 보냈다. 그 기간 실감했던 것은 선진국인 미국을 포함한 일본 및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인터넷 기반은 매우 열약하다는 사실이었다. 대한민국의 IT 인프라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였다.
지금 와서 당시 온라인 주문의 성공요인을 복기해보면, 그때에는 매우 획기적인 시스템이었기에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관점에서 성공요인을 분석하고 싶다. 바로 소비자의‘ 참여’다. 내가 주도했던 피자헛 온라인 주문 시스템에는 고객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만들어두었다. 피자를 주문한 뒤 멍하니 배달원만 기다리게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피자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고객을 방관자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우선 피자를 주문하고 받아볼 때까지 즐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을 만들어서 획득한 점수에 따라 다음번 주문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발급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은 쿠폰보다 직접 땀 흘려 얻은 쿠폰은 쉽게 버리기 힘든 법. 오히려 쿠폰의 이용률은 높아졌다. 인터넷 검색이나 채팅 중 피자를 주문하기 위해 해당 창을 닫고 피자헛 홈페이지로 옮겨와야 하는 수고도 없앴다. 소비자가 채팅창을 닫지 않고도 피자를 주문할 수 있는 주문엔진을 제공한 것이다. 발렌타인데이에는 하트 모양의 한정판 피자를 만들어 온라인에서만 판매했다. 다른 주문 채널이 아닌 온라인에서 편리하게 주문 할 수 있도록, 제품의 희소성, 오퍼의 한정성, 가격의 탄력성을 함께 제공했다. 혜택을 제공하면 사람들은 모이기 마련. 굳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외부 배너광고를 진행하지 않았는데도, 혜택이 많은 온라인 주문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왔다. 회사 입장에서도 일반 전화 주문보다 온라인 주문 쪽 운영비가 적게 들기에, 고객과 회사 모두 윈윈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소비자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한다. ‘ 소비자 참여’라는 포인트가 이 시스템의 확실한 성공요인이었다.
“이거 써보면 어때?”,“그 집 맛있니?” 사람들은 트위터나 페북, 카카오톡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주고받는다. 솔직 리뷰, 솔직 후기라는 말이 달린 블로그에는 댓글이 주루룩 달린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대중의 참여는 인터넷이라는 수단을 통해 날개를 달았다. 드라마나 영화로 치자면‘ 열린 결말’이다. ‘ 열린 결말open ending’이란 작가가 작품의 결말 부분을 명확하게 끝내지 않고 독자들이 직접 작품의 결말을 상상하거나 추리할 수 있도록 끝맺는 형태를 말한다.‘ 열린 결말’을 가진 스토리는 대중의 무한해석을 낳는다. 결말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대중은 스토리에 참여한 기분에 빠지게 되고, 그러면서 콘텐츠에 열광한다.
뉴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개인의 영향력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만 가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인생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대중을 방관자로 취급한다면, 그들에게서 어떻게 사랑을 기대 할 수 있겠는가. 사랑받길 원한다면,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무대(플랫폼)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빛나게 하자.
세월이 사물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분 스스로 사물을
변화시켜야 한다.
- 앤디 워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