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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현석 May 29. 2018

다름을 용인하라

〈나는 다른 것을 본다〉-12화-

익숙한 길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1이 아닌 0에서 시작하라”

길을 걷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 어떤 매장에 들어선 순간을 떠올려보라. 대다수의 매장에서, 아니 거의 모든 매장에서 (종류는 다르지만)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대개 귀에 낯익은 음악들이다. 매장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듣다 보면 간혹 마케팅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의미 없는’ 마케팅에 한해서다. 너도나도 하고 있으니 해야 하는 건 맞는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나만 하는 것은 아니고. 없으면 아쉽긴 하지만, 있다고 해서 딱히 뭐가 다른지 모르겠고. 결정적으로(!) 매장에 딱 어울리는 노래를 트는 게 아니라, 지금 유행하는 최신곡을 트는 곳이 대부분이다. 남들이 하니까, 이제껏 해왔으니까 해야 한다는 태도는 ‘의미 있는 다름’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나는 어떤 아이디어든 직접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마케팅 계획서만 봐도 눈앞의 결과가 빤히 보일 때가 있다. 공교롭게도 좋지 않은 결말일수록 쉽게 예상이 된다. 대개 기존의 전략을 답습하는 내용들로 채워진 경우다. 포인트 적립, 원 플러스 원, 경품 증정, 할인행사, 배너광고 등등. 이러한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 누구나 다 하는 것을 전략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가령 포인트 적립만 해도 마케팅 수단이라 하기엔 진부하기 짝이 없다. 동네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을 마셔도 도장을 찍어주는 시대다. 몇몇 금융회사나 유통회사에서 비교적 훌륭한 포인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무작정 따라 하기에는 예산이라는 장벽이 가로막는다.


원 플러스 원이나 경품 증정, 할인행사 등도 지나치게 고전적(?)이다. 그뿐인가. 자칫했다가는 오히려 브랜드 가치마저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다. 오랜 기간 고생해서 내놓은 신제품을 출시 하자마자 할인하거나, 다른 제품을 끼워서 팔거나, 눈요기 식의 경품을 붙여주는 것은, 우리 제품의 가치가 이것밖에 안 된다고 소리쳐 광고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신제품일수록 오롯이 그 제품의 가치만을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반응도 읽고 궤도를 수정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제는 없으면 허전하기까지 한 인터넷 배너와 SNS 마케팅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화면 여기저기서 번쩍이는 배너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갑자기 예고 없이 툭 튀어나오는 배너 때문에 짜증스러울 때가 더 많지 않을까? 원하는 정보를 찾아서 읽기도 바쁜데 굳이 불필요한 정보까지 찾아서 읽을 이유가 있는지를 생각해볼 일이다. 배너 자체에도 콘텐츠가 담긴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체적 콘텐츠 없이 제품 홍보만 담은 배너나 온라인 마케팅은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더욱이 SNS 마케팅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지도는 높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선호도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한다. 소비자는 날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까다로워지고 있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무엇이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인지 금세 알아차릴뿐더러, 자기들만의 순수한 소통 수단에 홍보성 메시지가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자칫했다가는 부정적 인지도만 굳어지기 쉽다.

영화 '아메리칸 허슬'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과거를 답습한다. 어째서일까.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허슬〉은 사람들이 사기를 당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다음의 명대사다.

“사람은 믿고 싶은 걸 믿는 법이다.”


결국 타인이 아닌 자기가 만든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사기를 당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종종 자기가 만든 룰에 속곤한다.“이 정도 마케팅은 기본 아니야?”,“그래도 그만한 건 없어.” 등의 명분이 빚어낸 고루한 환상이다. 이러한 환상을 깨지 못한다면 과거를 답습하게 되고, 과거의 답습은 정체로 이어진다. 물론 뭐가 됐든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눈앞에 놓인 기획안의 예산을 내가 지불해야 한다면? 선뜻 추진할 수 있을까?

경제가 호황일 때 기업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마케팅’이라는 폭탄을 투하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 경기가 불황, 혹은 침체로 돌아선 지는 오래전 일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물건을 고르는 속도는 신중해지는 반면, 싫증을 내는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더 이상 대중은 전형적인 멜로디와 리듬을 띤 비슷비슷한 음악에 쉽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도 사람들을 쉽게 사로잡았던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남들과 비슷한 전략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면,‘ 의미 있는 다름’을 만들어내겠다는 절실함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익숙해진 옷부터 벗어던져야 한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파는 일은‘ 러브레터’나 마찬가지다. 쉽게 대중의 답장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저기에 시장의 변수라는 지뢰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항상 새로움을 찾아 돌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이때 모든 것은 1이 아닌 0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기존 데이터를 잊고 제로베이스로 돌아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출발점에 서야 할 것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익숙함과의 연결 고리를 끊고,‘의미 있는 다름’을 만들기 위해 어떠한 태도를 갖춰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개인의 태도야말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태도가 바르면 능력도 향상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발짝 물러서서 0으로 돌아가는 순간, 대중은 한 발짝 가까워진다.


평가하기 전에 먼저 응원하라


얼마 전, 주주회의에서 신제품 출시를 위한 제안을 상정하고 발표한 적이 있다. 신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배경, 시장상황, 신제품의 특장점 등 1년여간 준비한 제품 아이디어, 패키지 디자인, 술의 맛 등을 뿌듯하게 발표했지만, 정작 주주들은 제품의 특장점보다 제품 출시와 관련된 투자와 수익, 손익 분기점, 현금 유동성, 기존 제품의 자기 잠식률 등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서로의 입장이나 관점이 다르면 말하는 언어나 관심사도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상품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상대의 언어로 대화하지 않으면 팔기 힘들다. 소비자와 소통할 때도 핵심 타깃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의 언어로 풀어줘야 한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회사 내부에서도 비교적 덜 창의적이고 수치와 데이터를 따지는 관리부서나 주주들과 소통하려면, 그들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는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조직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합체다. 사모펀드 KKR 창업자 헨리 크래비스는“나는 내게 반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을 두려움 없이 정확하게 말하는 사람, 설사 그것이 내가 듣고 싶지 않은 것이라 해도, 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원한다.”는 말로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 충돌을 조정하는 것도 리더의 몫이다. 조직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르다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공통된 비전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하나가 될 수 있다.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는 현장과의 괴리를 실감할 때가 종종 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언제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그래서 변수가 많은) 현장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반대로 현장이 우리의 기획과 전략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렇게 다른 생각과 입장을 조율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킨십이다. 자주 얼굴을 볼수록, 같은 곳을 바라보기 쉬운 법이다.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2111

‘친 영업 진보 마케터’가 되겠다고 선언한 후, 시간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현장을 적극적으로 찾아갔다. 영업 조직과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국 37개 지점을 방문하고, 매월 개최되는 권역 미팅에도 가급적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지점 방문 시에는 안건과 협의사항을 철저하게 경청한 뒤, 준비해 간 칭찬카드로 포상을 연다. 때로는 지역 상권에 나가 판촉행사도 함께하고 끝난 뒤에는 맥주를 마시며 정을 나눈다. 매장 주인들과 투박하지만 정감 어린 수다를 나누며 결국 우리의 비전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가령 회의에서도 분명 멋지게 준비한 자료인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자기가 준비한 내용에만 신경을 쓰느라 상대가 던진 질문의 핵심을 놓치는 일도 빈번하다. 나는 후배들에게 가끔 파워 포인트 대신 상대의 눈을 바라보면서 발표해볼 것을 권한다. 자기만의 방식이 아닌 상대의 언어로 소통할 때 한 차원 높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다름’을 용인하게 된다.


모두가 응원받는 삶을 원한다. 아주 작은 응원 한마디가 좌절을 딛고 도약하게 만들 수 있다. 누군가의 응원을 통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장기를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보면 정작 상대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혹자는 응원보다는 따끔한 지적이나 비판이 더 낫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응원해주는 치어리더보다 팔짱 끼고 평가하는 존재인 평론가가 더 많아 보인다. 덕분에 우리는 날 선 평가가 두려워 어깨를 움츠리고, 매번 평가의 스트레스에서 허덕인다.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상대에게도 해줘야 한다. 당신이 받고 싶은 것은 진정 무엇인가. 날선 평가인가? 아님 뜨거운 응원인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먼저 주어라. 리더인 당신이 먼저.


위대한 감독은 선수들로 하여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수한 선수라고 믿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는 선수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일단 자기가 얼마나 우수하다고 알게 된 선수는 자신의 최고 기량에 미치지 못한 경기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야구선수, 레지 잭슨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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