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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Oct 29. 2019

'그냥'이 가진 의미

가장 솔직한 대답

 누군가가 당신에게 뭐라고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몇 초동안 입을 오므리고 있다가 대답한다. "그냥요." 상대방은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못 하고 자리를 피한다. '그냥'이라는 단어는 그런 것이다. 성의도 없고, 고민한 기색도 없고,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못하는. 빵 점짜리 단어. 그것이 바로 '그냥'의 역할이다.


 누구나 어릴적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부모님이 물어보시는 한 마디가 있다. “왜 그랬어?" 나는 이내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그냥…” “그냥이 어딨어. 이유가 있을 것 아냐.” 부모님은 '그냥'이라는 단어 속에 숨은 어린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고 싶으셨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아이가 무슨 의도가 있겠나, 그냥 궁금해서 건드렸는데 그게 망가졌을 뿐. 하지만 나는 암묵적으로 '그냥'이라는 단어를 피해 이유를 만들어냈다. 그래야 질문에서 풀려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진실일까? 혼나기 싫어 둘러댄 거짓 논리가 나의 솔직한 마음보다 중요한걸까?


 애초에 모든 일은 '그냥'에서 시작하는 것 아닌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자 무슨 대답이 나오겠는가. "재미있어서요.", "그냥요." 이 얼마나 솔직하고 명쾌한 대답인가.


 함께 시험을 보고 취업을 준비하며 눈물콧물을 흘렸던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재미난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친해진 계기를 기억 못한다는 것이다. 그냥 정신 차려보니까 없으면 안 될 친구가 되어있더라. 이런 흐름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진짜 친구를 찾으려고 자를 들고 재가며 찾아다녔겠는가. 그냥 마음이 맞아서, 자꾸 말하고 싶고, 고민을 털어놓고싶고, 그러다보니 내 곁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는거지.


 우리는 '의미'를 찾다가 시작도 못 하고 놔버린 일들이 많다. 가만히 멍 때리는 것이 불편해졌고, 드라마에서조차 교훈을 찾아야했고, 그냥 답답해서 떠난 여행에서 변화를 느껴야했다. 의미는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는 것인데, 스스로 낸 숙제에 괴로워했다.


 '그냥 하고싶어서', '재밌어보여서'라는 단어는 세상을 바꿔놓는 좋은 단어다. 이유를 찾기도 전에 튀어나온 나의 중요한 속마음이다. 머리가 시키기 전에 몸이 먼저 나가는 것. 그것보다 솔직한 이유가 어디 있으랴.


 우리가 행위에 이유를 찾아내고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을 설명하고 공감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타인에게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냥'이 배척당할 이유는 없다. 이 또한 하나의 방법일지 모른다.


 왜냐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조차도 '그냥' 돌아가는 것이니까. 이름 그대로 스스로 흘러가는 진리니까. 자연 입장에서 '의미'를 찾는 행위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냥'이라는 단어가 귀하고, 중요하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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