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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Feb 28. 2020

① 한 자로 시작하는 한자소설 : 애꾸할아버지

황무지의 애꾸 할아버지


                         "荒 (거칠 황, 공허할 강)"


 "아니, 황 할아버지. 밭이 왜 이 모양입니까?"

 지게를 지고 가던 사내가 마루에 멍하니 앉아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황 노인은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은 밭은 언제나 비옥하여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오죽하면 며칠 전, 자식 셋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서로 밭을 갖겠다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그랬던 황금밭이 잡초와 조약돌에 뒤덮여 황무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데 어떻게 밭을 일구나?"

 사내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애꾸눈이 되어있었다.


"아니, 누가 어르신 눈을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당장 동네 사람들을 불러오겠…"

"내가 했지."

 노인의 얼굴은 애꾸눈임에도 불구하고 평온해보였다. 사내는 황당한 얼굴로 손사레를 쳤다.


"지금 장난이 나오세요? 이 밭은 어르신의 전부 아니었습니까. 눈이 안 보이면 밭은 어떻게 갈고, 물은 어떻게 줍니까? 대체 누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이렇게 못된 짓을!"

"정말 내가 했네. 아무 것도 보기 싫어서 그랬네."

 사내는 못 믿겠다는 투였지만 노인은 한 치의 떨림 없이 사내를 바라보며 완고하게 얘기했다.


"아니, 그럼 밭은 어떻게 하시려고…."

"심(心)도 제대로 못 가꾸는데 밭은 가꿔서 뭐 하나?"

 노인은 안 보이는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황무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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