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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누리 Mar 08. 2019

다이어리를 쓰게하는 3가지 법칙

게으르고, 단순하며, 사소하라

벌써 한 해가 시작된지 약 90일이 지났다.

팬시샵을 꽉 채웠던 다이어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렸다.

아, 그 중 한 권은 당신의 책장 구석으로 도망갔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쓰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

무슨 글을 써야하지,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다

결국 펜을 놔버리는 모습이

마치 브런치에서 뒤로가기를 누르는 지금의 나와도 닮았다.


나는 드디어 긴 침묵을 깨고

브런치에 첫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책장에 있는 다이어리도

이제 그만 잠에서 깨길 바라는 마음에서 작은 글을 써보고자 한다.


내가 작성했던 4년 간의 다이어리들


1. 하기 싫은 일을 해라.


직장 업무던, 공부던, 청소던 상관 없다. 내가 지금 당장 해야되지만 하기 싫은 흔한 일을 만들어라.


내가 다이어리를 맨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었다.

아버지가 주신 빨갛고 두툼한 다이어리가 나의 첫 다이어리였다.

빨간 수첩은 내가 시험공부를 하려고 의자에 앉던 그 찰나에 내 품에 들어왔다.


하필 아버지는 시험공부를 하기 싫어서 핑곗거리를 찾고 있던 그 찰나에 수첩을 주셨고,

나는 공부를 조금이라도 미룰 심산으로 다이어리를 펼쳤다.


그렇게 매일 공부를 미루다보니 나는 다이어리 한 권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진짜다.

재밌는 것은 성적도 올랐다.


잘 생각해보면,

마라톤 선수가 본 경기 전 경기장을 가볍게 한 바퀴 달리듯,

역도 선수가 100kg 짜리 바벨을 들기 전 가벼운 바벨로 몸을 풀듯,

우리에게도 워밍업을 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은 다이어리를 쓸 수 있게 해주고,

다이어리는 하기 싫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2. 단순하게 하라.


예전에는 다이어리를 사는데 시간이 다 갔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다이어리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우선 이 단계에서 체력을 반 넘게 탕진한다.

어찌저찌 골랐으면, 이 판타스틱한 다이어리에 어울리는 판타스틱한 색깔펜들을 산다.

그리고는 천장화를 그리는 미켈란젤로 마냥 한땀한땀 예쁘게 다이어리를 꾸민다.


┌─`♡┼┼ ♡><+─‥●
パŀ乙Б한てŀヱ말ぁГ는건‥
*˘-˘ㅅ·ij∧БΟ·ijㅅㅓ
フłズБ수l운일Ølでŀ、
어려운 것은‥˘★’
(¸˛Οıス·ij부ㅌㅓユ것을
증명ぁГ는것Ølでŀ、♡+
└─`♡┼┼ ♡><+─‥●

 

 …

여기서 이미 내 체력은 종이인형이 된다.

이때 깨달았다. 잘 꾸미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현재 내가 다이어리에 쓰는 도구는 검은색 볼펜 하나와 깔끔한 스티커 몇장 뿐이다.

다이어리를 꾸밀 최고의 장식은 내 일상이다.

 



3. 사소하게 하라.


뭐든지 다 써라.

여행은 왠지 아프리카에 가서 코끼리랑 친구 먹은 정도는 되어야 소재거리가 될 수 있을 것같았고,

일상은 가다 돌부리에 넘어져서 주운 복권이 1등에 당첨되었다는 내용정도는 되어야할 것같았다.


하지만 코끼리가 없어도, 1등 당첨 복권이 없어도 우리 일상은 충분히 신선하다!

사실 우리가 초등학교 때 썼던 "오늘은 밥을 먹었다. 친구와 놀았다. 재밌었다." 마저도 괜찮다.

그런 황당한 일상도 쌓이면 서사가 생기고, 스토리가 생기더라.

이렇게 내가 한가하고 평화롭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그렇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말고 무엇이든 써내려가라.


밑에 쓴 글들은 나의 올해 다이어리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참 읽어보면 가관인데, 보다보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채 흘러가는 추억의 파편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게 된다.

그것을 잡아주는 일기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도.


명심하자!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축적하기 쉬운 재산이

바로 일기임을.




01.21


오늘은 그야말로 말썽투성이었다.

동전 몇 개는 남겨놓고 무늬를 새겨야하는데, 싹 다 무늬를 새겨버렸다.

불행 중 다행으로 1개 남겨놓은 것이 있어서 살았지만….


그리고 주문을 맡긴 인쇄업체는 실컷 재질을

파나플렉스로 해달라했는데 다른걸로 제작해줬다.


이분과 전화를 할 때는 확인을 제대로 해야겠다.

메일 내용은 꼼꼼히 안 보는듯. 파일명에 한번 더 쓸 것.


흑흑, 퇴근하고 싶어.


↑ 22일은 이렇게 열심히 불만을 토로했으면서, 오늘은 무지 멋지게 발표를 했다!

박사님, 교수님, 사장님들만 계시는 곳에서 발표를 하다니~ 난 멋져

(진짜 옆 귀퉁이에 이렇게 썼다)


01.30

방청신청 연락 안 왔당

(놀랍게도 오늘 방청 당첨 문자가 왔다!)


02.01

일기를 쓰다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02.06

<퇴근하고 해야할 것들>


1. 포토샵 숙제하기

2. 브런치 글 쓰기 (똥이라도 괜찮다)

3. OO님한테 감사편지 쓰기


03.01


너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용감하며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강인하고

자신이 평가하는 것보다 똑똑해.

약속해, 언제나 이것을 기억하고 있겠다고.


- 크리스토퍼 로빈이 곰돌이 푸에게-

(By winnie the po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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