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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팔트 고구마 Sep 15. 2021

인종차별 바라보기

틀림을 다름으로 우기지 마

 외국 여행 중 겪는 크고 작은 사고도 시간이 지나면 웃고 넘길 일이 대부분이다. 다만,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면 '인종차별' 문제를 꼽고 싶다. 여행 전만 해도 이런 걸 겪어 본 적이 없어 그 느낌이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막상 당사자가 되어 보니 상황에 따라 짜증을 넘어 불쾌함까지 치밀어 오른다.


 이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한 번쯤 이 주제의 당사자로서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베트남 배낭여행자 거리서 만난 여행자들. 백인 여자에게 입맞춤한 베트남 남자를 두고 백인 남자들이 어떻게 키스를 허락할 수 있냐며 다퉜던 때. 이런게 지금은 없겠지. 설마


 멀쩡하게 잘 대화하던 사람이 갑자기 피부로 우열을 논하는 소리를 한다던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차별적 논리를 동원해 하얀 피부색을 가진 자기가 우월한 사람임을 증명하려 하는 사람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인종 차별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차별적 언행을 할 때 알고 그런 걸까 모르고 그런 걸까? 한편으론 차별을 당하는 사람이라면 그 상황을 참아야 할까?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 줘야 하나? 아니면 똑같이 돌려줘야 할까?


 난 아직까지도 이해가 안 되는 말이 있다. 바로 '똑같이 행동하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말이다.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참으라고 지어낸 말인 걸까? 가진 것 없는 약자가 도덕적 우월감을 갖기 위한 말인 걸까? 차별주의자들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실수인 걸까 아니면 정말 속으로 그렇게 믿는 걸까? 


 많은 일에 예외가 있듯 저 말에 예외조항을 두기로 했다. 특히나 인종차별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아, 너 한국사람이야? 나 한국에 얼마 전 다녀왔는데. 한국인 김치 정말 많이 먹는 거 같아. 그런데 마늘 냄새 너무 역겹더라. 한국 사람한테도 그런 냄새가 나.”


 여행하는 중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을 수차례 겪었다. 한국을 얼마나 여행한 건지 모르겠지만 식문화 차이를 두고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더군다나 한국 사람을 앞에 두고서. 이 사람은 상식이 있는 사람인 걸까?


 “한국 사람 신체가 그런 걸 어떡하겠어. 우리가 김치 먹는 것처럼 너흰 치즈 먹잖아. 그런데 넌 좀 다른가 봐. 왜 음식 썩은 냄새가 나? 아, 썩은 내... 샤워 좀 하는 게 어때?”


 위의 말은 내가 백인들에게서 냄새로 느낀 부분이지만 하지만, 한국 사람과 결혼한 미국 백인 아저씨로부터 본인 스스로 내게 한 고백이기도 하다. 자신에게도 고약한 체취가 나는 걸 보면 사람의 신체 특성과 음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그렇게 냄새 공격을 당했을 때 위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자기의 행동이 어떤 건지 똑같이 느껴지길 바랬으니까.


 받은 그대로 돌려줬을 때, 그들의 반응은 쉽게 나뉜다. 사과하거나,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무지성 신념대로 나가던가.






빅토리아 호수를 배로 지나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시간. 차가 지나가면 분진은 2-3분여간 진하게 떠 있어 여간 고역이 아니다.


 평화로운 빅토리아 호수가 있는 탄자니아 므완자(Mwanza)를 지나 르완다로 가는 중이었다. 배를 타고 건너 도착해보니 1분도 안 걸려 비포장 길이 나왔다. 차가 지나갈 때마다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났다. 좋지 않은 상황 속 4시간이 걸려 포장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길거리 식당. 너무 힘들어서 먹어야 했다.


 굉장히 더웠던 데다 목도 말랐고 배까지 고팠기에 눈에 띈 식당에 들렀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지친 상태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들리는 소리.


 “칭챙총~ 칭챙총~”


 내가 잘 못 들었나? 그 옆엔 날 보면서 노래 부르듯 "칭챙총~"을 연거푸 외치던 여자가 있었다. 몸이 많이 지친 상태여서 가만히 앉아 보고 있는데, 계속 '칭챙총'만 반복하더니 돈을 달란다. 그리고선 내 사진을 찍네? 그리고선 계속 빈정대듯 웃어댔다.




지친 상황 속 좀 더 현명한 대응 방법이 있었을까?


 짜증이 밀려왔음에도 너무 지친 상태여서 말하지 않고 가만히 노려보았다.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그 사람을 찍고 무표정으로 보기만 했다. 몇 번이나 히히덕거리며 웃는다. 배를 채우고 기운을 차리니 가버렸네? 일부러 무시하려고 한 행동은 아닌데 사라져 버렸다.


 내가 그 사람처럼 똑같이 행동했으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건가? 대처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나 스스로가 참 답답했다.




튀니지의 수스는 낮과 밤 모두 매력적이다. 가난한 자들의 콜로세움이라는 엘젬  원형 경기장까지 쉽게 다녀올 수 있다.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튀니지의 3번째 도시인 수스는 멋진 항구와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곳이다. 개방된 이슬람 문화와 지중해 바다, 사하라 사막을 끼고 있는 지리적 특징 덕분에 독특한 분위기를 띤다. 또한 로마제국을 괴롭혔던 고대 카르타고 문화 유적을 살펴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독 수스에서는 내 얼굴을 보면서 지나면서 큰 소리로 '칭챙총'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아프리카에서의 기억이 떠 올라 상상만 하던걸 해보기로 했다. 마치 래퍼들이 비트에 맞춰 랩 하듯 리듬을 타고 춤추면서 칭챙총~ 칭챙총~ 거리면서 그들에게 동영상을 찍는 척하며 다가갔다. 그들은 얼굴을 피하며 도망갔다. 




도망가지 마세요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나 같은 경험을 했다는 글을 봤다. 그들이 잘 몰라서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들이 잘못한 걸 알까? 크든 작든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절대 유쾌하지 않은 걸. 






 내가 겪은 일들은 어떻게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일들이다. 외국의 교민들이 사는 곳에서는 차별적 발언이나 행동으로 면박을 넘어 생명의 위협까지 가하는 경우도 본다. 짧은 시간 스쳐 지나갈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여행 중 인종차별을 겪는 상황에서 참으란 말을 많이 보고 들었다. 차별하는 사람들이 모르고, 교양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라고. 왜 다른 범죄는 대응하면서 유독 이런 건 이해심까지 발휘해 참으라고 말하는 걸까? 대적할 용기가 없는 걸까, 속마음엔 정말 인종에 우월이 있다고 느끼는 걸까? 한국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여행 중 겪는 인종차별을 겪는 상황을 보면 주로 외국어 소통 문제, 무리 중 소수이거나, 약자라서 당하는 게 많다. 정황 상, 분위기상 상대적 약자에게 할 수 있는 짓이다. 자기의 피부색과는 다른 나라로 여행 가서 속으로 생각할지언정 말로 드러내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서도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그걸 겪는 당사자가 본인이라도 참아야만 한다는 소리는 감히 헛소리라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을 다름으로 보는 건 틀린 생각이니까.



아프리카에도 인종 차별자는 결코 적지 않았다. 탄자니아 므완자


 인종차별을 직접 겪는 상황에 "똑같이 행동하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말에 예외를 두지 않고 겪어 본 바대로 똑같이 돌려줘봤다. 찢어진 눈의 포즈를 지으면 나는 눈을 크게 뜨는 포즈를 짓거나 코를 잡는 시늉을 했다. 그 상황을 그냥 참지도 않았고, 선도 넘지 않았다. 그냥 그들이 한 모습 그대로 돌려줬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사과하거나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비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어차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일이니 교양이 없다거나 덜 된 사람이라며 자위할 필요조차 없다. 들키지 않으면 계속 그 행동을 할 사람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야 한다. 인종차별을 해 놓고서 자신의 행동이 드러나 불이익을 받으니 용서를 비는 사람들의 영상이나 사례가 많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내가 근사하게 반응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다만 차별적 상황을 겪으며 꼭 기억하는 사실 한 가지는 마음에 새겼다. 인종 차별을 당하는 건 우리 존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니 여행에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죄책감없이 묻은 먼지처럼 최대한 빨리 털어내야 한다. 남은 여행은 즐거워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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