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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팔트 고구마 Jun 28. 2021

정의는 살아있다. 아주 간신히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여행 중 사람에게 살의를 느낀 적이 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그랬다. 처음엔 나 스스로를 악마 같다고 느꼈으나 두 번째에는 오히려 첫 번째에 반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의 강도를 경험한 후 학창 시절에 배웠던 성선설이나 성악설에 대해 깊은 의문이 생겼다. 


 사람이란 존재는 선할까? 악할까? 삶의 많은 문제들은 우리의 일상 속 여러 가치의 충돌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사람에 대한 살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나는 악한 사람인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면 어떻게 행동할까? 생각대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상황이 닥치기 전까진 알 수 없을까? 






해발 3200미터대 고도를 오르며 숨이 차오르는데 만나는 펑크는 절대 반갑지 않다.


 멕시코 시티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푸에블라로 이동 중이었다. 계획과는 달리 이동에 상당히 시간을 낭비했다. 해발 3000미터 대가 넘는 지역을 비를 맞으며 넘어야 했고, 중간엔 펑크까지 나는 바람에 계획보다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애들도 뛰어놀길래 그냥 평범한 작은 동네인 줄만 알았다.


 해가 저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달릴 거리를 조금은 좁혀 놓고자 난 야간 라이딩을 강행했다. 라이트에 의지해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던 중이었다. 어디서부턴가 뒤에서 자전거로 따라온 두 명의 남자가 내 옆으로 바짝 붙어 라이딩을 했다. 스페인어로 말을 거는데 무슨 말인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전혀 알아먹지 못하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자전거 뒤에 타고 있던 남자가 팔을 내밀어 날 잡아당기려 했다. 곧 본능적으로 싸늘한 기분이 등과 동시에 페달질을 멈췄고, 나는 그 자리에 섰다. 눈을 쳐다보니 그중 한 명이 영어로 내게 말했다. 


 “Give me your Phone and Money! We have gun!!"


 응?!?!?!!?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달리고 있던 일방도로에 들어오기 전 어두웠던 로터리에 멈춰 폰을 꺼내 지도로 방향을 확인했는데, 그곳에서 나를 본 두 명의 강도가 뒤쫓아 왔던 거였다. 난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 한가운데에서 범죄의 표적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총과 칼을 갖고 있다는 말과 동시에 내 눈으로 그것들을 확인하는 순간 심장 뛰는 소리가 마치 내 귀를 때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 엄청난 절망감이 밀려왔다. 


 '아... 강도! 이 여행 여기서 끝인가.' 


 한편으론 신경이 예민해지며 그 상황 속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데다 머릿속도 복잡했다. 캄캄한 밤길, 길에 가로등이라곤 없었고 내 자전거 라이트 만이 유일한 빛이었던 상황. 그 인적 드문 도로를 갑작스레 차가 한 대 지나갔다.


 차가 올 때부터 갑자기 그들은 태도를 바꿔 친절한 분위기로 말을 건넸다. 


 “Where are you From?" 


 지나가던 차를 의식해서였을까, 미묘한 그들의 태도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어색한 말이 끝나고 여전히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속 몇 초가 흘렀다. 그들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하는 동안 내 심장은 두렵고 떨림으로 쿵쾅대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난다? 총을 갖고 있는 걸 본 이상 나는 어떤 선택이든 해야 했다. 내가 물건을 준다 해도 그들은 나를 죽일 수 있을 테니. 그들은 총과 칼을 가졌다. 총으로 위협하며 소리 없는 칼 또한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자전거 라이트로 퍼져 나오는 빛으로 그들의 표정을 헤아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차가 한 대 지나갔고 자동차 빛이 강도의 손을 잠시 스쳐가는 순간 손안에 숨겨놓은 반짝이는 칼날을 보았다.


 '안 되겠다. 선택을 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여행이지만 내 묻힐 자리 찾으러 여행한 게 아니다.'


 그 짧은 시간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그렸다. 빛이라곤 작은 자전거 전조등이 전부였던지라 자전거 짐을 내 몸에 기대 놓고 있던 상황에서 어둠 속 나의 행동은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다. 난 어둠 가운데 주머니 속에 넣어놓은 스위스 나이프를 꺼내 날을 폈다. 두 강도와의 거리를 계산했다. 


 '총을 가진 녀석과 대략 2걸음. 저 녀석을 해치우고 그의 총을 뺏든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죽도록 도망쳐야 한다.'


 폰을 줄 듯 말듯한 연기와 대화로 약간의 시간을 끌었고 한편으론 한 손은 숨긴 채 나이프를 쥐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간절히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른다. 이러고 싶지 않다. 제발 다가오지 마라.... 오지 마라.....


 그때 갑자기! 멀리서 다가오는 차 한 대. 무슨 생각이었을까? 빛이 내 쪽으로 오는 걸 보자마자 난 나도 모르게 내 자전거를 강도들이 있던 쪽으로 밀어 나를 잡을 수 없도록 막았다. 그리고 길 가운데로 달려가서 두 팔 벌린 채 살려달라고 외쳤다. 강도들은 순식간에 왔던 길로 도망갔고, 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뭔가 이상한 상황임을 직감한 것인지 운전자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상향등으로 날 비췄다. 속도를 줄이며 날 살피는 듯싶더니 굉음 소리와 함께 속도를 내고는 날 피해 가던 길로 급하게 가버렸다. 아마 내 손에 있는 칼을 보고 그렇게 가버렸으리라.


 차가 사라지자마자 나는 켜놓은 라이트를 끄고 미친 듯이 멀리 보이는 마을의 불빛을 따라 페달질을 했다. 뒤에서 다시 강도들이 쫓아올까 봐, 날 향해 총을 쏠까 봐 너무 무서웠다. 극단의 공포로 인해 내가 살면서 그렇게 페달을 밟아 본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사고 직후 다음 동네에 만난 학생들. 전혀 전투력이 없어 보이던 경찰보다 이 친구들이 더 큰 도움을 줬다.


 경찰이 있는 다음 동네에 도착해서야 겨우 마음이 놓였다. 그 사건 후 난 며칠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두려움과 죄책감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나는 살인자가 될 뻔했다. 이 사실을 블로그에 남겼었고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줬다. 자기를 지키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그들은 악함을 갖고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니살레스의 낮과 밤


 콜롬비아의 대학도시이자 가장 안전하다고 알려진 마니살레스. 이곳에서 또 한 번 강도를 만났다. 밤길 대로변에서 지나가던 2명이 달려들어 내 얼굴을 때리고 숨겨 놓은 드라이버로 팔을 쑤셔댔다. 무거운 가방 때문에 그들은 날 쉽게 제압하지 못했고 두꺼웠던 옷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다만 난 내 얼굴을 직접적으로 맞은 탓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그들과 격한 몸싸움을 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걸까? 행인들이 마침 보고 있었던 데다 제압하기 힘들자 그들은 물러섰다. (그러나 그들은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했다.)




몸싸움의 흔적 찢어진 가방. 숙소의 총알 자국을 보며 범죄율이 높은 곳에서는 언제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뒤를 돌아서서 아무 일 없이 떠나려던 그들에게 난 순간적으로 큰 일을 저지를 뻔했다. 항상 주머니칼을 갖고 다녔기에. 처음엔 죄책감이 심했지만, 두 번째엔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다. 아무도 날 지켜주지 못한다면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어야 했으니. 






 두 번째 사고 이후 난 인간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처음 사고를 겪었을 땐 내가 품은 마음 때문에 나 스스로가 악마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관점이 바뀌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사고를 쳤으면 어떻게 됐을까? 나는 죄가 없을까? 나의 정당성이 입증이 될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상대의 해코지를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내가 이 상황을 겪으며 깨달은 것은 난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생각지도 않은 나 자신의 모습이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일상 속 법과 치안은 언제나 한발 늦다는 것을 알았다.




악을 행하라는 종교가 있을까? 중남미 나라에 광장을 중심으로 꼭 하나는 위치한 가톨릭 성당.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난 위험한 곳을 여행할 때면 해당 지역이나 나라의 사건 사고를 미리 찾아본다. 통계가 피부로 와닿는 데는 경험만큼 좋은 게 없다. 앞선 강도 사건들과 다른 자잘한 범죄들을 겪고 치안이 안 좋은 나라들의 사고 사례를 보면서 사회 정의와 법에 대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이 있다. 법은 존재한다. 그리고 법이 나를 못 지켜줄 때는 자주 있다. 멀리 있진 않지만 나에게 오기까지 시간은 언제나 한 발 늦다.


 보통의 사람에게도 법과 정의는 살아있다. 아주 간신히. 그리고 그 간신히 살아있는 정의는 내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지켜야 한다. 또한 남들의 행동과 결론적으로 발생한 일을 두고 절대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머리로만 생각한 걸 겪고 나서야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겪어보면 생각한 반응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똑같이 닥치면 어떻게 하겠냐고? 되묻고 싶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당신이라면 옮다고 믿는 가치대로, 머릿속으로 여러 번 생각한 대로 반응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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