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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팔트 고구마 Jun 23. 2021

그 울고 있는 꼬마는 나였네

한 존재가 내 마음에 들어올 때

 대략 서른 살 정도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만 해도 아이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다. 말이 안 통하는 데다 답답하면 울어버리는 조그만 생명체와 교감을 한다는 것이 내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혼한 친구들이 자기 아들딸을 SNS에 올리는 사진 때문이었을까? 친구들의 애정이 그 사진에 담긴 게 느껴지면서 내 마음도 조금씩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낯선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졌고 전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아이들에게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마니살레스 중심가


 중미의 끝, 파나마를 거쳐 남미의 시작인 콜롬비아에 도착했다. 구체적 목표를 갖고 온 도시가 있었으니 그곳은 마니살레스(Manizales)였다. 이곳은 콜롬비아의 주요 커피 생산지이자 삼각 핵심도시(MAM-Medellin 메데진, Armenia 아르메니아, Manizales 마니살레스) 중 하나로 알려진 곳이었다.


 긴 시간 마음에 품고 있던 것, 바로 체계적인 커피 공부를 하기 위해 이곳에서 직업학교를 찾았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우리나라 코이카 단원의 도움으로 이곳 부학장님을 소개받았고 한국 사람을 좋게 봐주셔서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도 허가가 났으니 머물 숙소를 찾아야 했다. 마니살레스는 콜롬비아에서도 많은 대학들이 모여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덕분에 하숙생을 위한 집들이 여러 곳 있었고 나 또한 일반 대학생처럼 하숙집을 찾아 나섰다.




결국 내가 살 집이 되었다


 동네 주변 전봇대와 안내판을 보며 부족한 스페인어로 여러 집을 살펴보는데 맘에 드는 곳이 없었고 몸도 지쳐가고 있었다. 문득 길을 걷다 눈에 띈 어느 집의 창문에 붙어있는 종이만 보고 무심코 그곳으로 걸어갔다. 


 문을 두드리자 날 반겨준 건 관리하는 아줌마와 4살 배기 꼬마 아이였다. 낯선 동양인의 등장에 신기하게 내 모습을 계속 쳐다보던 남자아이. 빈 방을 돌아보고 거실로 내려와 아줌마와 대화를 나누는데 남자아이가 엄마 뒤에서 내 앞으로 가까이 얼굴을 빼꼼 들이민다.




산티아고를 처음 만난 날


 뭐야 이 녀석...? 귀엽게 생긴 데다 웃고 있어서 내가 먼저 장난을 쳤다. 두 팔을 잡고 공중으로 띄워 빙빙 돌려줬다니 재밌다고 까르르 웃어대며 두 번 세 번 더 돌려달라고 떼를 썼다. 대화 후 집 위치와 방의 조건이 만족스러워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 해보는 하숙 생활을 콜롬비아에서 하게 됐다.






 내 방에 자주 와서 놀아달라고 떼쓰던 것을 몇 번 들어준 게 이 꼬맹이와의 본격적인 관계의 시작이었다. 내 허리 높이도 오지 않는 오는 키에 뽀글뽀글 라면머리를 한 그 녀석의 이름은 산티아고. 매일 아침 신발 좌우 짝을 바꿔 신고 나타나 내 방문을 두드리던 사랑스러운 귀여운 아이였다.




아침잠을 날 덮쳐서 깨우는 귀여운 녀석, 산티아고


 야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늦잠을 잘 때면 자기 몸 높이만 한 침대에서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키득대는 소리와 함께 얼굴을 비벼대며 아침을 깨웠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났다. 어린아이와 이렇게 가까이 지내며 시간을 보낸 적은 처음 해본 경험이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며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생겼다. 보통의 관심을 넘어선 따뜻한 그 무언가가.




아이와 숨바꼭질. 찾을 수 있어도 찾기 어려운 척 못 찾는 척 발연기를 해야 한다.


 산티아고의 엄마는 콜롬비아 고향 마을의 가난이 너무 괴로워 뛰쳐나왔다고 했다. 도시에 와서도 일거리가 없었기에 이곳에서 하숙생을 들여 집안 청소와 빨래, 식사 등의 허드렛일을 하며 산티아고와 초등학생 딸 루이사를 키운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이를 가졌음에도 결혼은 하지 않았고, 산티아고의 아빠는 다른 여자가 생겨 아이들은 엄마에게 맡기고 떠나버렸다. 말로만 듣던 중남미의 미혼모와 두 아이들의 삶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일을 하느라 잠시 집을 비운 상황이 되면 산티아고는 혼자 남았다. 아무도 놀아줄 사람도 없었기에 산티아고는 시간 대부분을 집안에서 혼자 TV를 보거나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게 전부였다. 겨우 네 살 배기가 혼자 우두커니 있는 뒷모습이 얼마나 안돼 보이던 지. 납치 같은 범죄가 있어서일까? 데리고 가서 놀려해도 집 주변엔 아이들이 모여 노는 흔한 놀이터조차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주변엔 같은 나이대의 친구도 없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쉬고 있었다. 


 쿵쿵쿵!!! 쾅쾅쾅!!!


 " Ma~! Mamita~! Ma~Mamita~! (엄마~ 엄마야~!)"


 겨우 자두만 한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엄마를 애절하게 부르는 산티아고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동안이나 멈추지 않는 문소리에 방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니 문 손잡이 높이에 겨우 닿는 녀석이 문을 두드리며 방에 들어가려고 낑낑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엄마는 집을 잠시 비웠고 방 안에 있던 산티아고 삼촌은 방문을 잠근 채 자기 친구들과 큰 음악을 튼 채 술 마시며 왁자지껄 놀고 있던 상황이었다. 소란스러웠던 탓이었을까? 다른 하숙생 하나도 나처럼 문을 열어 밖을 살짝 보더니 익숙한 일인 양 다시 자기 방 문을 닫아버렸다.


 산티아고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집 안 전체를 울리는 큰 음악 속에도 삐져나오는 산티아고의 울음소리는 너무 애처로웠고 눈물범벅이 된 녀석의 얼굴을 보고 나니 나로선 그 상황을 도저히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Santi, Venga Aqui. Quieres Coca? (산티아고, 이리 와. 콜라 마실래)?”

 “(끄덕끄덕) Si. (응.)”




작전 성공


 방으로 불러 눈물을 닦아내고 자기 얼굴만 한 컵에 콜라를 가득 부어 한잔 줬다. 금세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그리고선 내 방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중얼중얼 댔다.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 사진을 찍고 겨드랑이를 간질이며 놀았더니 언제 울었냐는 듯 얼굴은 밝아졌고 웃음이 번졌다.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밖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산티아고에겐 관심 밖으로 밀려났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산티아고와 함께 놀았다. '그래, 사랑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원치도 않는 환경에 있게 된 것이 너의 잘못이겠냐.'


 이날 저녁은 유독 잠이 안 왔다. 침대에 누웠을 때 거짓말처럼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 울면서 문을 두드리고 울고 있던 꼬마는 바로 나였다. 나였구나. 내가 저 녀석 만할 때 울고 있던 내게 다가와 따뜻한 손과 함께 놀아준 동네 누나가 생각났다. 심지어 7살 때 이후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는 순덕이라는 누나의 이름도.


 언젠가 산티아고가 네가 나와 같은 상황에 있었을 때 누군가에게 꼭 그래 줬으면... 너의 슬퍼하는 모습 대신 예쁜 웃음을 보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했다.


 어린아이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중미에서 극단을 치닫던 나의 지독한 외로움은 꼬마와 함께한 시간부터 사라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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