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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팔트 고구마 Jun 11. 2021


즐거움 속 죄책감

얀테의 법칙

 여행 중 유독 혼자임을 실감할 때가 있다. 끝내주는 광경을 보면서 당장 그 감정을 표현할 상대가 없을 때다. 압도되는 풍광 속 쫀득거리는 한국말로 지금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혼자 여행에선 이 마음을 나누고픈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눈앞에 나타난 장관을 두고 흥분한 상태로 말하는 속도가 빨라져서 실수를 하더라도, 말 그대로 개떡처럼 말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을 수 있는 내 가까운 사람들이 더욱더 생각난다.



라오스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나는 시간.  하늘 보기.



비행기가 아닌 곳에서 구름을 만지며 내려다볼 곳은 흔치 않다. 안 왔으면 후회조차 몰랐을 베네수엘라 로라이마 국립공원




저 거대한 빙하는 얼마나 됐을까? 아르헨티나 엘 깔라파테 




사자 한 마리의 등장으로 버팔로 떼가 움직였다. 위풍당당이란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던 곳. 케냐 마사이마라 국립공원


 한편 그 벅찬 광경이 주는 느낌과는 별개로 생기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애매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죄책감이었다. 


 사람들이 한 번쯤 와 보고 싶어 하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더욱 그랬다. 나만 혼자 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났다. 아직 외국 여행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고, 공사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시는 아버지 생각이 났다. 난 왜 그렇게 느꼈을까?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이 없는데.




이곳 여행 후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급히 귀국해야 했다. 귀국 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더 생각이 났던 곳. 페루 마추픽추


 지금은 과거보다 개인의 가치와 취향을 좀 더 존중하는 시대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내놓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마음의 혼란이 예전보다 덜하다. 그러나 세계일주를 시작한 후 초반 몇 년은 죄책감이 심했다. 즐겁고도 행복한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이 자꾸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을 때 왜 그런지 이유조차 몰라 어떻게 이 감정을 처리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그 마음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도대체 왜? 






 개인주의만 만연해 있을 것 같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부모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단합을 강조한단다. 그래서 자녀에게 ‘너는 최고야, 특별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각자의 독특한 능력이 있으니 우쭐대거나 잘난척하는 행동을 하지 않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좀 더 나아가 평범함에서 벗어나 튀려고 하는 행동이 별로 좋게 보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이렇게 규범화된 문화를 <얀테의 법칙>이라 부른다. 그래서 북유럽 사람들은 본인이 잘난 척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문화가 있다. 또는 남이 자신이 잘한 것에 대해 치켜 굉장히 추켜올려주면 그 상황을 어색해하며 받아들인다.  




스웨덴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덴마크 소설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내용을 어디에선가 읽었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스웨덴 출신 배우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의 인터뷰 장면을 보고 나서였다. 그는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음에도 그 소식을 자기 주변에 이야기하고 자랑하기는커녕 트로피를 몇 달간 옷장 안에 넣어뒀다고 말했다.




얀테의 법칙


 알렉산더의 나이가 마흔임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로브 수상의 축하에 겸연쩍어한 행동의 이유를 그가 설명한 얀테의 법칙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왜 죄책감을 느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죄책감은 곧 사회를 통해 내면화한 것에 기인한 것이라 결론 내렸다.


 우리나라 사람이 평소 한국에서 아프리카의 부족처럼 옷을 입거나 중남미 식의 베소(볼 맞춤 인사)를 하지 않듯이 각 국가와 사회에는 저마다의 규범이 시대별로 세대별로 존재한다. 70-80년대의 교육방식대로 나 역시 좋은 건 나누고 서로 배려하며 힘든 것은 도와야 한다는 가치들을 배웠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우리의 현대사와 지금의 사는 모습이 증명하듯 지금 시대에 이걸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람의 교묘한 이기심은 마음 한켠에 있고 나이가 들수록 무뎌지며 과거의 가치는 개인에게 적용될 때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하지만 근사한 다른 표현으로 포장된다. 분단 이후 어려운 시대를 거쳐온 부모님의 세대와 그다음 세대인 70-80년대생에게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가 같을 리가 없다. 평화로움 속 급변하는 환경에서 자란 90, 00년대생은 오죽할까? '개인의 행복'에만 그치지 않는다. 오늘날의 물질관, 인간관, 세계관, 종교관 등은 과거와 많은 차이가 있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 간극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로미오와 줄리엣 축제가 열리는 중세 분위기의 성. 덴마크 헬싱괴르


 주체적인 나로 살기 위해선 변하는 시대를 보고 자신의 삶을 우선순위에 놓고 내면화시켜야 할 가치와 아닌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했다. 지금의 나를 다그칠 필욘 없지만 내면화해 놓고 불편해하는 한국식 얀테의 법칙은 분명 따져봐야 할 부분이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 동년배의 여행자들을 만나면서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대한민국 사회에 스스로 잘 길여진 사람인지 탄식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여행 후반부로 가면서 길들여짐 속 불편한 감정을 지워내고자 다분히 개인적인 개똥철학 하나를 만들었다. 자신의 행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며 스스로의 행복에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과한 자책이라고. 


 내 안에 행복이 가득 차지 않으면 흘러나올 것은 없다. 자신의 내면에 행복샘이 가득 넘쳐야 자연히 흘러나온다. 그래야 남의 행복감에도 질투하지 않고 내게 흘러넘치는 것에도 인색하지 않을 수 있다. 행복은 사람에게 필수재라 생각한다. 어떤 면에선 일상의 공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툴 필요도 없거니와, 필요한 사람에겐 어렵지 않게 나눌 수 있다. 특히나 정신적인 공허가 큰 요즘엔 설명하기 힘든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난 이 중요한 필수재를 인지상정이라는 말로 자신의 이기적인 것과 속좁음을 가리는 것보다 스스로의 내면에 좀 더 충실해서 행복을 흘러나오게 만드는 게 더 멋져 보인다. 어차피 남의 인정을 원하는 사람치고 쪼잔한 사람이라고 듣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 반대로 남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다면야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려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오로지 자신의 행복에만 신경 쓰면 될 일이니까.


 이 여행은 경험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도 중요한 이 행복론을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가볍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가능하다면 매일 다른 모양으로 재미있게 살 거야! 그냥 좀 즐거우면 어때서?! 같이 재밌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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