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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팔트 고구마 Jun 16. 2021

외롭고 나서야 외롭지 않았다

관계로의 도피

 세계일주를 하는 여행자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을 한다 하더라도 여행 기간이 긴 만큼 누구나 한 번쯤은 외로움을 겪을 때가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 감정을 진짜 외로움이라고 알아챘을 땐 중미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였다.


 어쩌면 자연스러울 때였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난 지 4년 차로 넘어간 때였고 시끌벅적한 멕시코 여행 때와는 달리 중미의 대부분 나라들은 대비될 정도로 차분한 분위기였으니까.


 내 몸은 지쳐가고 마음 힘 빠지는 상황에서 마음속 동굴을 부지런히 살폈다. 외로움이 데려온 종종 솟음치는 짜증과 깊은 우울감으로 인해 감정 기복이 심각했다. 분명 이전과 같지 않았다. 그것은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지독한 폐렴 때문에 며칠간 잠을 못 자고 밤을 새웠다. 과테말라 산 페드로 아띠뜰란 호수의 일출


 '무엇이 문제일까?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 욕구불만? 내 여행을 인정받고 싶어서? 여행 중 항상 느끼는 안전의 문제?'  이 답답함을 해결하려고 가장 먼저 한 접근법은 외로움은 '혼자'임을 느끼는 것이기에 누군가 있어야 해결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내 마음 속 동굴속에서 질문을 하고 추려서 남은 몇 가지 질문을 살폈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말하지 않는 은밀한 것을  대해 좀 더 살펴보기로 하고. 






하늘도 나를 놀리는 생일날, 엘 살바도르 라 리베르따드


 엘살바도르의 서핑 도시 라 리베르따드(La libertad)에서 보낸 생일은 정말 고독한 날이었다. 천둥번개가 쳐 날씨도 좋지 않았고 근사한 날의 기분을 내기에도 도시의 규모와 인프라는 초라했다. 범죄율과 살인율이 높은 나라임을 알았기에 밤에는 행동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머물렀던 숙소 앞에는 창녀들이 있었다. 진한 화장을 한 그들은 숙소 손님이 그녀를 침대로 데려가 주길 바라며 손님들을 향해 미소와 함께 가랑이를 벌렸다 오므리길 반복했다. 그들을 보면서 당시 겪던 외로움에 대해 던져본 질문이 있었다. 


 '내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은 욕구로 인한 걸까?'


 외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가능한 매춘. 내가 억압된 부분이라 생각했던 욕구는 마음만 먹으면 해결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을 한다고 해서 내 외로움이 전혀 나아질 것은 없다 생각했다. 오히려 그 뒤에 올 허무함과 더 큰 외로움이 더 문제지.






 몸뚱이나 욕구의 문제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여행 중에도 항상 온라인 속 인간관계와 분주함 속에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인들과 SNS를 통해 연락을 하고 있었고 여행지에선 시간을 들여 집중이 필요한 스페인어 공부와 커피 공부 등으로 바빴다. 내가 쉰다고 할 때에도 머릿속으로 여행 중 활용할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외로움에 압도되는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집중을 하면 또는 반대로 쉬면 좀 나아질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몸과 마음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내가 겪는 외로움에 대한 해결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중미 6개국 길에서.  더운데 비맞고 달리고 고치고 먹는 것은 자전거 여행자의 일상이다.  


 한참을 고민하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원래 필요했던 시간이 이제야 나타난 것이라고. 왜 이걸 나쁜 것 마냥 밀어내려 했었을까? 외로움이란 감정은 사람이 살다 보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멕시코에서 그 외로움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내가 이미 경험했어야 할 감정이 밝고 에너지 많던 친구들과의 관계 때문에 지연이 된 거라 볼 수밖에 없었다. 이 감정은 오롯이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진 중미로 오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나타났으니까. 


 멕시코에선 주말에 심심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냈고 약속을 만들어 그들과 함께 정신없이 놀았다. 고독할 시간을 가급적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그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주말을 조용하게 보내면 왠지 낭비 같고 손해 같아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앞으로 언제 올지 모를 멕시코에서의 그 시간들을 유의미하게 건져내야 한다는 압박감도 갖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생각에 더욱 그렇게 행동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같이와 따로의 시간을 생각해 봤다. 온두라스 친구네 집


 내가 관계 속으로 도피한 시간 동안 외로움은 잠시 떨어져 있었다. 진작에 마주쳐야 했을 외로움이 나만의 시간이 많아진 때가 되어서야 나타난 거다. 심리학 책에서나 읽던 사람의 중요한 감정 하나를 깨달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표현일까? 외로움은 삶에 나타나는 자연스런 감정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이면 될 것을 큰 문제로 비화하거나 그것에만 몰두해서 우울증으로 번지는 일로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외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어떤 것으로 채우기보다 그냥 외로움 자체에 푹 잠기기로 한 것이다. 남이 해결해 줄 수 없었던 나의 외로움이라는 감정 속으로. 외로움 속으로 잠긴다는 표현은 외로움이라 느껴지는 감정이 갑자기 나타나 함께 동반한 안 좋은 느낌까지 생길 때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 다른 감정으로 채우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외로움과 외로움이 가져온 부수적임 감정 모두를 하나씩 관찰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전에 보지 못한 나의 생각과 과정을 깊이 살펴볼 수 있었고 이전에 보지 못한 나 자신을 마주해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나를 살피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타인의 관점에서 날 바라보는 인지의 과정이기도 했다. 


 고독함이 싫어서 그리고 무료함이 싫어서 외로움이란 녀석을 해결하기 위해 관계로 도피를 했다니. 나도 내가 처음 겪는 모양이라 그랬던 걸 거다. 매일 하는 여행은 매일이 처음이자 새로운 경험이라 외로움이란 감정에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고 핑계대고 싶다.




엄청나게 비 내리던 날 할 수 있는 건 내가 비가 되거나 비가 그치길 기다리거나.  파나마 산티아고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문제 해결을 하면 욕을 먹겠지만 외로움에 잠기고 나서 정말 거짓말 같은 변화가 생겼다. 외로움이란 감정을 그다지 인지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외로움이 심해져 극에 달했을 때는 기분이 갑자기 나빠짐과 동시에 무언가가 내 팔꿈치를 씹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아팠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그랬다. 그러나 외로운 감정이 사그라들면서 그 통증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워졌다. 처음 겪어보는 마음의 변화와 체감하는 통증의 변화에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3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나를 참 몰랐다. 이걸 알아채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외로움을 제대로 겪고 나서야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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