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으로 욕망을 다루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호주에 도착해서 좌절감을 느낄 때가 생생한데 몇 달 지나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었다. 몇 달간 돈이 쌓이는 것을 보고 나서 처음 계획과는 달리 호주에서 길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커져버렸다. 20대에 대기업 과장 월급 이상을 벌고 있으니 호주 와서 워홀러로 돈 좀 모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호주를 그리워한다는 이유를 충분히 느낄 정도였다.
이곳 커뮤니티에서 이민 오신 어른들과 대화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중 만난 한분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내 나이 때(나보다 20년 이상 나이가 많으셨다.) 중동으로 파견 나가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셨다는 말을 들려주셨다. 호주로 올 생각조차 해 본 적 없었지만 돌아보면 과거의 중동 파견 경험이 이민을 결정하는데 한 가지 역할을 하셨다고 했다. 다른 분들과도 대화를 하며 알게 된 것은 이민을 선택한 사람들의 계기는 비슷했다는 사실이다. 하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자기가 처해진 현실을 벗어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숙고 후 결정한 것이란다.
이런 대화가 마음에 남아있을 무렵은 호주 생활 반년차가 되던 때였고 호주 도착 당시와는 다른 딴생각이 들었다. '1년을 더 살면서 억 단위의 돈을 모을 것인가, 혹은 좀 더 멀리 보고 이곳에서 정착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 미래를 알 수 없었기에 안정적인 현재를 택하고 싶은 마음을 두고 갈등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취직한 고기 공장에는 아프리카 출신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어느 날 휴식 시간, 수단에서 온 조세핀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업장 안에서 매일처럼 벌어지는 재미없는 유머에 깔깔대는 뻔한 이야기만 할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내게 충격이었다.
조세핀 아줌마는 자국의 내전을 피해서 호주로 왔단다. 자기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호주에 올 거라 생각조차 한 적 없었고 이곳에 온 것도 난민 비자 자격으로 온 것이라 했다. 일할 때의 느긋함과는 달리 수단에서의 삶을 설명해주던 아줌마의 단호한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반군에 의해 부모, 남편, 자식들 모두 죽고 살아남은 한 명의 남동생과 함께 호주 땅에 왔다고 했다. 다행히 새 삶을 찾아온 호주 생활은 좋지만 그녀가 겪은 사실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상실과 아픔이었다.
앞선 만났던 사람들의 선택이 자기 인생을 위해 고심해 내린 결정이듯 내게도 숙고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익숙한 내 나라에서 재도전? 아니면 낯선 나라로의 이민?
시간을 들여 돈을 벌고 인내한 것 때문만을 이유로 여행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내게 안정에 대한 유혹은 생각 이상으로 달콤했으니까. 안정을 선택하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당시 나로선 묘한 감정 안에 있었다.
20살 때만 해도 30살이 그렇게 커 보였다. 막상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고 나니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20대의 나와 별 다른 게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이대로 살다 간 도저히 40살, 50살이 되어도 이대로 일 것만 같았다. 정착과 떠남을 두고 내 마음엔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다.
'관성대로 살기 싫다. 세계일주도 하고 싶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이 여행을 떠날 당시를 돌이켜 보았다.
'좋든 나쁘든 지금까지의 인생을 태어났을 때부터 계획하고 온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난 후 지금 안정감을 선택하면 미래에 후회로 남지 않을까?'
'내 계획이 미래에 나를 제대로 그리고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뻔한 생각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어진 상황에 대한 반응을 생각이라 착각하고 사는 것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지금이라도 나만의 개똥철학을 만들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그리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갈 행동이 차라리 꿈꾸는 미래에 가까워질 수 있는 삶이 될 것 같아서.
더 큰 욕망으로 작은 욕망을 다스려보기로 했다. 내 지난 고생의 시간을 '세계일주'라는 욕망에 담아 '현실안주'라는 욕망과 비교해 놓고 보니 세계일주가 훨씬 탐스러워 보였다. 결정하고 나니 다음 행동은 쉬웠다. 흔히 하는 말처럼 10년만 젊었더라면 이라는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내 삶에 가장 젊은 때, 지금 당장 하는 게 중요했다.
호주 생활을 네 달여 남겨두고서 고기 공장에 퇴직을 요청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럴 엄두도 못 냈을 텐데 막상 선택하니 홀가분했다. 그렇게 다음 목적지를 준비했다.
모든 일에 때가 있다고들 한다. 적어도 내 몸이 10년이 지나서 지금과 같지 않음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이 여행을 시작할 때의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폼나게 말해보고 싶었다. '보험으로 사는 인생 대신 모험으로 사는 인생을 선택한다!'라고.
보험으로 호주에 안전장치를 두기 위해 1년 더 합법적 체류가 가능한 세컨드 비자를 고민했었다. 하지만 난 그 계획을 접었다. 이 선택을 두고 바보 같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 선택이 일자리를 잡을 때의 간절함처럼 여행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 같아서.
호주에서 충분한 여행 자금을 벌었고, 그전에는 없었던 삶의 기술을 조금 배웠다. 호주에서 보낸 밀도 있는 시간처럼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매일 각성하며 초조하게 살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것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을 알면 내 삶의 우선순위대로 살다 끝을 맞이하는게 더 행복한거라 된다고 믿게 됐다. 그 순간을 경험할 때가 대부분 죽을 때지만 적어도 난 우연히 그리고 조금 일찍 알았다고 생각한다. 깨달은 대로 항상 살 순 없어도 자신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자기가 정해 놓은 삶의 우선순위를 따라가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믿기 때문이다.
자전거 세계여행처럼 호주에서의 시간도 모험 속 작은 모험이었다. 간절함을 갖고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1년의 생활을 끝냈다! 드디어 힘들게 잠 줄이며 시간과 노동을 돈으로 바꾼 나에게 세계여행을 누릴만한 충분한 자격이 된다고 말해줄 시간이었다.
1년 만에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2010년 3월 31일에 인천에서 중국 칭다오로 배타고 여행 출발.
중국 7개월, 동남아 -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까지 1년.
2011-2012년 호주에서 1년
2012-2015 동남아 배낭 여행 이후, 아메리카 대륙 종단.
캐나다,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파나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갈라파고스섬),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2014년 중간에 아버지의 수술과 장례로 잠시 귀국)
2015-2016 유럽 여행.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독일, 폴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튀르키예
2016 중동 및 코카서스 국가 여행.
아랍에미리트, 오만, 이란, 아르메니아, 조지아
2016-2017 동유럽, 남유럽(발칸반도 국가들) 여행.
우크라이나, 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세르비아, 코소보, 북마케도니아, 그리스, 알바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산마리노, 바티칸
2017 아프리카 종단 여행.
짐바브웨,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 르완다, 우간다,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
2017 러시아 및 발트3국, 중유럽, 서유럽 일부 그리고 중국 운남성 여행.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지역,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독일, 네덜란드, 중국 운남성
2018년 유럽, 북아프리카 여행.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룩셈부르크, 스위스, 이탈리아, 튀니지, 스페인, 모로코
그리고 같은 해 12월 28일. 마지막으로 포르투갈에서 세계일주 여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