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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팔트 고구마 Jun 08. 2021

행복에도 색깔이 있을걸?

행복은 경험이야

 2012년 12월, 난 미국 휴스턴에서 대통령 부재자 투표를 마치고 멕시코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그때는 비자 기간이 며칠 남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멕시코 국경까지의 거리는 밤새 달려도 시간을 넘겨버릴 것 같아 불안했다. 진땀 흘리며 야간 라이딩도 감행했지만 거리를 좁히기엔 텍사스는 너무나 큰 땅이었다. (텍사스 주 크기만해도 남한 면적의 7배다.)


 운이 좋게 만료를 이틀 앞두고 주유소에서 만난 현지인 클락이 국경도시인 브라운스빌까지 가는데 도움을 줬다. 자연스레 그와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미국을 떠난 후 그와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다. 




길에서 만난 현지인의 도움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with Clark


 어느 날 그는 남들은 거의 묻지 않는 질문을 했다.


“Are you Happy?"


 응? 그 질문을 받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당혹스러웠다.


 '음.......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행복한가?'


 그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Yes.'라고 대답했었다. 몇 주 간의 간격을 두고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했기에 그에게 질문의 의도가 뭐냐고 되물었다. 클락은 “네가 가고 있는 그 길이 정말 네가 원하는 것이냐?"며 물었다. 문자로 전해진 행간의 느낌 때문이었을까?? 그의 질문이 간섭처럼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본질적인 질문으로 다가왔다. 


 '난 어떤 길을 가고 있지? 그 길에서 난 행복한가? 난 어떨 때 행복한 사람이지?'






 나는 행복의 사전적 정의를 따라 살 것도 아니고 행복 자체를 궁극의 목적으로 삼고 있지도 않다. 내가 겪어온 삶은 행복으로만 가득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행복 아닌 감정을 겪지 않고 행복을 알 수가 있을까? 여행 기간 동안 앞선 클락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다.


'난 행복한가? 어디에 서 있나? 난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나는 초라한 외모와 행색 때문에 빌어먹는 집시나 히피 같은 부류로 볼 지도 모르고, 나름의 이유를 갖춘 것 때문에 두 바퀴로 세상을 돌아다니는 여행자 행색의 구도자로 볼지도 모른다. 


 뜻한 바를 따라가고 있다고 한들 무조건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기 싫은걸 하고 살면서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은 나로선 더욱 원하지 않는 부분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행복에 대해 물어보면 저마다 다른 정의를 내릴 거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의 다양한 종류의 행복이 있는 걸.






 내게 세계일주 중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미국에서 먹었던 이름도 명확지 않은 아보카도 계란 게살 찜 요리였다.




여행 중 가장 많은 자전거 여행 멤버가 모였던 때.  미국 오레곤 주 밴든.


 미국 오레곤 주의 끝에 있는 도시 밴든(Bandon)에서 미국, 독일, 한국 여행자로 구성된 자전거 여행자만 무려 7명이 모였다. 알래스카에서 요리사로 일한 미국인 여행자 필이 실력 발휘를 했다. 전날 저녁 호스트 집 앞을 흐르는 코퀼 강으로 갔다. 통발 속에 닭가슴살을 넣어놓고 다음 날 아침에 갔더니 게들로 바글바글했다. 잡은 게를 찐 후 여행자들이 모여 손으로 하나씩 게살을 발라냈다. 풍성한 게살에다 갖은 채소를 다진 후 아보카도와 계란을 섞어 간을 한 뒤 오븐에 케이크처럼 구워냈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다. 끝내준다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음식이 주는 행복이 이런 거란 걸. 




라이딩 중 눈으로 먹는 하늘 맛, 그리스 메테오라


 2016년 겨울 당시엔 발칸반도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스에서 알바니아를 지나올 때는 좋지 않은 도로 인프라와 폭탄급의 비 때문에 상당한 고생을 하며 지나왔다. 며칠간 비를 맞으며 여행했고, 일부 지역에선 다리가 끊겨 자전거를 업쳐 들고 얼음장 같은 강을 건너기도 했다. 몹시 지친 상태라 그저 쉬고만 싶었다. 


 12월이 되어 도착한 몬테네그로. 아드리아 해를 따라 북상하던 중 휴양도시 코토르(Kotor)에 도착했다. 점점 추워질 겨울의 날씨였는데 코토르에 머물 때의 날씨는 가을처럼 화창하고 상쾌했다.




숙소 앞 코토르의 아침.


숙소 앞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코토르 만(灣)은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듯한 풍광이었다.




코토르 만을 달리며


 코토르는 여름엔 유럽의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겨울엔 비수기다. 덕분에 숙소에 머무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걸어서 10초밖에 걸리지 않는 숙소 앞 바닷가는 지내는 동안 정말로 잠잠했고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이렇게 매일같이 평온한 주변환경 속 한 손에는 다채로운 맛의 드립커피를 쥐고 있었다. 그렇게  코토르 만(灣)을 마치 집 앞마당처럼 쏘다녔다. 




지형이 독특한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만 


 코토르는 옛날 해적들이 해안선의 이점을 이용해 거점을 삼았다는 곳이라 했다. 그 해적을 떠올리기엔 내가  코토르에서 겪은 시간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던 곳이었다. 일주일 간 매일 숙소 앞 의자에 앉아 옅은 파란색의 하늘과 시시각각 변하는 보석빛 바다, 초록초록한 산과 조화를 이룬 회백색 암석을 보면서 먹고 자고 쉬면서 천국 같은 시간을 보냈다. 상쾌한 공기에다 다채로운 드립 커피 맛은 입까지 즐겁게 하는 화룡점정이었다. 




몬테네그로 코토르 만의 랜드마크. 바다 위에 만들어진 성당인 암굴의 성모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고 '행복에도 모양과 색깔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처음 던져본 시간이었다. 와.... 이런 종류의 행복도 있구나...






 여행 중 그리고 여행을 끝마치고 나서도 한동안 클락이 던진 질문의 답을 찾으려 애썼다. 그동안 그 길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느낀 것은 다양해서 하나로 말하기가 힘들다. 같은 것을 두고도 마음 상태에 따라 너무나 달랐으니. 정신차리기 힘들 정도로 배고플 때 입에 넣는 빵 한 조각처럼 내겐 행복이란 별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경험을 해보고선 더욱 그랬다. 


 자전거 여행에서 느낀 건 '행동'을 통해 받아들여진 감정 그 자체였다. 행복이란 단어를 미분적분해서 얻을 게 있을까? 그 행복이란 정의에 합의를 한들 내가 못 느끼면 무슨 상관이람? 수백만 가지의 경험 중 항상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그걸 몇 가지로 단어로 억지로 찾아낼 이유도 없었다. 


 인간 본성이든 뇌의 착각이든 마음의 문제든 감정적 반응이든 상관없이 나 자신이 느끼는 게 좋은 거라 결론을 내렸다. 내 행복에 대한 정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행복의 정의에 대한 주체와 객체를 바꿔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사람은 행복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경험한다.'라는 익숙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겪지도 않은 걸 정말 온전히 알 수 있을까? 감정까지? 그건 앎 정도에 불과하다.


"Are you happy?" 


클락의 질문에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대답할 준비가 됐다.


 "나도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몰라 출발했어. 남에겐 개똥 일지 몰라도 내겐 금과 같은 인생철학을 만들고 있으니 걱정 마. 내 삶이 행복이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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