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파티!
2010년 3월 31일 시작한 여행은 2018년 12월 28일이 되어 끝났다. 중간에 사정으로 한국에 들어온 시간을 포함했고 중복된 나라와 미승인 국가, 스탬프 없이 지나친 나라를 포함하면 100개국이 조금 넘는다.
자전거는 사고와 도난을 포함해 4대의 자전거로 총 71,000km 정도의 거리를 달렸다. 달린 거리가 최소 지구 2바퀴 거리는 될 줄 알았는데 기록된 바가 그러하다. 속도계가 제대로 안 먹는걸 한참이 지나서 알았지만 지구 한 바퀴 거리(40000km)를 돌고 나서 달리는 거리보다 내가 볼 곳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인생에 시간은 한정이 되어있으니까.
긴 여정이었다. 이 기간 동안 열심히 나 스스로를 테스트한 것 같다. 내 인생 속 가장 찬란한 시간이었다고 감히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었던 장쾌한 세상보기의 시간이자 나를 보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잘 끝맺고 돌아왔다는 만족감에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다.
돈이 있어 떠난 여행이 아니라 외국에서 적은 돈으로 더 버틸만하다고 계산하고 떠난 여행이기도 했다. 정말로 난 길에서 죽을 줄 알았다. 행복을 즐기면서도 언제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회사원의 사직서 마냥 가슴 한켠에 넣어놓고 여행을 했었다.
인천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공항 의자에 잠시 걸터앉으니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북받친 감정과 동시에 터져 나온 눈물을 한바탕 시원하게 쏟아냈다. 곧 기쁨과 편안함,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씁쓸함이 느껴졌다. 도착하자마자 느낀 그 씁쓸함이 여지없이 좋았다. 더 이상 내 나라에서는 비자 날짜를 세지 않아도 되고, 나라별 시간대 계산, 숙소의 체크아웃 시간을 염려하거나 환율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 여행의 끝을 종종 떠올려 보곤했다. 그리고 어떤 모습 일까도 상상해 봤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 엄청난 변화나 시대적 사명감 따위가 생겨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여행 중 봤던 찌질하고도 속 좁은 나 자신의 모습이 있음을 아는 것과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관점을 갖는 게 우선이었다.
여행에 후회는 없다. 다만 만족스럽진 못하다. 과거의 적당히 무딘 부분이 쓸데없이 날카로워졌고, 없던 몇 가지 고집은 더 강해졌다. 그런데 이 여행이 내가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줏대와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그것! 바로 '삶의 애착'을 갖게 했다고 믿는다.
사람에게 행동의 강력한 동기는 사랑과 두려움, 이 두 가지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확신한다. 희미하게만 알고 있던 강력한 그 두 가지 요인을 통해 여행을 무사히 이끌어왔다. 그 길에서 배운 것들을 하나둘씩 삶에 적용하며 어제 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나를 발견하고 있을 때 정말 흥미진진했다. 과거가 아닌 여행 중의 오늘, 매 순간의 지금이 그랬다. 매일의 가슴 두근거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느낌은 현재를 살아가는데 충분한 이유였다. 외로움과 권태감도 있었지만 여행 중 경험한 것들을 통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조금은 안 것 같다.
식상하고도 지루한 교훈을 나의 것으로 이해하기 오랜 시간 페달을 밟았다. 남들에겐 뻔함이었지만 내겐 소중한 나의 개똥철학이 되었다. 먹방 본다고 내 뱃속에 음식들이 차지 않듯 내 경험은 내가 해야 하니까.
나는 여행하지 않은 사람은 조각되지 않은 돌덩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 많은 경험이 그 결과물을 보장하진 않지만 생각만 했던 부분은 경험을 통해 한번 더 걸러지며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과정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사람은 여행해야 한다. 그것은 본능이자 사는데 필수 요소라 믿는다.
누구나 자신만의 대항해시대를 살면서 모험을 떠난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게 존재의 의미는 아니다.'는 말이 자신의 가슴을 잔잔히 울린다면 앞으로의 자신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뱃사람의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선 선진들의 대항해처럼 나도 부실한 자전거 하나를 돛단배 삼아 이 지구를 두 바퀴로 항해했다. 세부적인 그동안의 모든 여행 기록을 블로그에 남겼다. 필요에 의해 한번쯤 찾아볼 누군가 혹은 비슷한 길을 떠날 독자분의 자신만의 대항해시대로 만들기를 바라며 내가 느낀 수많은 수많은 종류의 벅찬 즐거움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느꼈으면 좋겠다. 푸아그라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푸아그라에 대해 이야기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경험한 만큼 행복의 종류를 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 역시 누군가가 심어놓은 정보의 씨앗으로 내가 여행했듯 나의 기록이 후에 자신의 길을 찾아나갈 분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길 빈다.
바쁘고 시끄러운 세상, 자신을 돌아볼 시기가 적은 때, 여행만큼 자연스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을까? 온전히 나만의 모험을 떠나는 모든 분들에게 건투를 빈다.
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린다.
철학자 니체가 말했다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을 사랑하라)란 말의 의미를 여행 후반부에 살 떨리게 느꼈다. 앞을 알 수 없는 삶에 두려움은 나보다 더 삶을 더 산 인생 선배들의 메시지를 통해 공감할 수 있었다. 독일 사람 니체는 오늘날 죽고 없지만, 그의 메시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수 김연자 님이 되살렸다.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가볍게 <아모르 파티>를 들으며 웃음 속 매일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었으면 좋겠다.
이 가사가 우스운 사람이 있나?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
<아모르 파티 - 김연자>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 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말해 뭐해 쏜 화살처럼 사랑도 지나갔지만
그 추억들 눈이 부시면서도 슬펐던 행복이여
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이제는 더 이상 슬픔이여 안녕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