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끊겼습니다

버스도 드문드문 언제 오나 싶고요

by 눈꽃



일이 늦게 끝났습니다. 아니, 일은 평소랑 다를 거 없이 끝났는데 직장 동료와 쌓인 이야기를 하느라 늦었습니다. 3분만 빨리 말을 끊었더라면 으레 그랬듯 지하철 두 번 환승해서 매끈하게 집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요. 집에 어떻게 가나 고민하며 카카오 맵을 두드렸습니다. 다행히 어찌어찌 집에는 갈 수 있게 버스가 굴러가네요. 집 앞 까지 가는 버스를 타긴 무리고 근처까지 갈 버스가 1분 후 도착이랍니다. 열심히 뛰었는데 제 옆을 씽 지나갑니다. 다음 버스는 6분 후라네요. 열심히 계산을 해봅니다. 6분 후 도착하는 버스를 타면 조금 걷겠지만 집은 도착하겠고, 운이 좋다면 다른 버스로 환승을 해서 집 앞에서 내릴 수 있겠네요. 그래서 버스를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사람들이 길가에 줄줄이 서서 택시를 잡습니다. 대부분 택시에는 파란 불이 켜져 있습니다. 예약이 되어 있다는 표시지요. 빈차의 붉은빛을 혹은 자신이 예약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허공에 휘휘 손을 내젓습니다. 나도 편하게 택시 타고 집에 갈까 고민하는 찰나, 기다리던 버스가 옵니다. 지하철 역으로 찍고 들어갔다가 그대로 나온 탓에 “환승입니다.”라는 소리가 울립니다. 집도 못 가고 길바닥에서 헤매지는 않겠네요.


오늘 탄 버스는 처음 타봅니다. 그래서 처음 본 길을 달려가는 중이지요. 어둠이 깔려 있어 더더욱 낯섭니다. 집으로 가는 방법이 무수하네요. 차도 많고 지하철도 많고. 이 도시는 살기 참 좋아요.


저는 지하철도 없고 버스만 있는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철이 들고 난 후에야 버스 노선이 많아지고 어디 역을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는 방송도 나왔어요. 그 전에는 내리기 전 역에 있는 큰 마트나 병원 이름, 육교의 위치 같은 걸 외우고 긴장한 채로 버스를 타야 했죠. 혼자 치과를 다녀오는 날이면 엄마 몰래 아껴둔 용돈으로 포켓몬 빵을 사 먹었어요. 바짝 긴장해서 버스를 탄 저를 위한 작은 선물이었죠. 그땐 핸드폰도 없고 정류장도 너무 작아서 엄마가 알려준 데서 버스를 타고 아저씨에게 물어 버스에서 내렸죠. 지하철은 제가 교복을 입고 한참 더 후에 생겼어요. 1호선 개통 기념으로 일주일 무료 운행을 했는데 친구들은 우르르 달려가 지하철을 탔어요. 서울도 안 갔는데 지하철을 다 타본다며 신기해했죠.


옛날엔 버스 한 번, 지하철 한 번 타는 게 설레고 긴장되는 일이었는데 이젠 일상이 되어버렸더라고요. 길을 잃으면 주변 사람을 잡아 물을 필요 없이 핸드폰을 켜면 될 일이고요. 지도를 읽을 줄 모르던 저는 익숙하게 길을 찾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어딘가 가는 방법을 설명해줘요.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네요. 380원짜리 승차권 두 장 챙기는 대신 교통카드가 든 카드지갑을 들고, 졸다 깨도 다음 정류장 이름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어 걱정도 안 되고.


앞으로 뭐가 더 어떻게 변할까요? 그리고 저는 거기에 또 적응해 낼 수 있을까요? 지금 버스가 달리는 이 낯선 길은 내일이 되면 더는 낯선 길이 아니게 됩니다. ‘가 본 길’이 되어 새로이 눈과 머리에 담기겠죠. 다니는 차가 없어 뻥 뚫린 길로 버스가 달려갑니다. 흔들흔들거리는 와중에 몇 글자 쓰려니 멀미가 나네요. 버스가 멈추면 거기서 내리고 몇 분 걸으면 집에 도착합니다. 낯섦의 도착지가 익숙함이라니, 참 그럴듯하지 않나요? 굳은 택시비로 맛있는 거나 사 먹어야겠어요.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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