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팟

27만원 주고 산 1세대 아이팟 터치

by 눈꽃




스무 살이었나, 스물 한 살이었나.


애플에서 처음으로 터치로 작동하는 아이팟이 나왔다. 틈틈이 알바를 해서 모은 돈이 든 통장을 몇 번이고 펴보며 고민했다. 갖고 싶은 물건을 내 능력으로 살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였다. 사고 싶은 걸 참아야 했던 전과 달리, 내 돈이 생기고 살 지 말 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까지 생긴 상황이었다. 한두 푼 하는 게 아닌 데다가 몇 십 만원을 덜컥 써본 적도 없어 고민하던 중, 얼리어답터 선배가 아이팟을 사서 며칠 쓰고 자금난에 시달려 중고로 팔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ATM에서 만 원짜리 27장을 찾아서 그 선배를 찾아갔다. 그거, 제가 살게요.


아이팟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아이튠즈가 없이는 노래를 기계에 넣을 수 없었고, 어플의 개념이 뭔지도 잘 몰랐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이리저리 찾아보며 사용법을 익혔다. 널찍한 충전 단자와 세련된 이어폰 디자인,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어깨 으쓱할 수 있었던 내 아이팟.


그걸 참 오래도 썼다. 고장 난 적도 없고 느려지지도 않는 데다 이것저것 어플을 깔아 여러 기능까지 사용할 수 있었느니 업그레이드된 버전을 사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고깃집에서 서빙하고 불판 갈아가며, 더운 여름 팥빙수 오백 그릇 만들어가며 번 돈으로 산 아이팟. 매일매일 가지고 다녔다. 어디든 챙겨 다니고 항상 손에 들려 있었다. 아이팟 2 아이팟 3 거기에 스마트폰이 나와 쏟아져도 나는 20대 초반에 중고로 산 아이팟 1을 사용했다.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는 내가 아이팟을 잃어버렸다. 아이팟이 내 손에서 사라졌어도 걱정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아이팟을 잃어버린 장소가 교회였기 때문이다.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난 후 가방을 정리하다가 의자 위에 아이팟을 두고 그대로 나와버렸던 거다. 잃어버린 곳이 어렸을 때부터 다녔던 교회였기에 당연히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다음 주일에 교회에 가면 내가 앉아있던 그 자리에 아이팟이 그대로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교회 사람들이니까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다음 주, 나는 아이팟을 되찾지 못했다. 20대 초반을 온전히 함께했던 내 친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분실물이 있는지도 교회에 물어보았고 아는 권사님께 주변에 여쭈어 봐 달라고 부탁도 드렸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지만 내 아이팟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십계명이 버젓이 성경책 맨 앞에 있는데, 그 성경책을 펼쳐 읽는 교회에서 물건을 잃어버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엄청 이상했다. 아홉 살부터 다녔던 교회라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궁금했다. 그리고 아직도 궁금하다. 내 아이팟을 손에 넣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본당 벽에 큰 십자가를 보고도 타인의 물건을 가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아이팟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죽어 쓰레기장 어딘가 파묻혀 몸이 썩을 100년, 200년 후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산산이 부서져 이리저리 찢기고 뜯겼을까. 뜨거운 숯을 옮기고 기름범벅이 된 불판을 씻어내며 번 돈으로, 한여름에도 몸이 덜덜 떨리는 냉장창고를 몇 번이고 오가며 팥과 언 딸기를 옮기며 번 돈으로 산 내 첫 아이팟. 그때는 미련 없이 얼른 포기했는데 오늘따라 아이팟이 그리워진다. 아끼고 좋아했던 것과의 이별,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었을지언정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감정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시간에 맞춰 일어나 온라인 예배를 위한 준비를 하고, 기도를 하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교회 긴 의자 뒤에 붙은 좁은 책상 위에 두고 온 아이팟이 눈에 어른거릴 것 같다.











이전 06화죽기 좋은 날